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성인병을 학술적으로는 대사증후군이라 하는데, 복부비만, 고혈당, 고혈압, 고중성지방혈증, 낮은 고밀도 콜레스테롤혈증 중 3가지 이상이 한꺼번에 찾아온 상태를 말한다. 대사증후군은 이 자체로 문제일 뿐 아니라 향후 당뇨병과 심뇌혈관질환 발생 위험을 높이는 요인이기도 한데, 젊은 연령대에서 유병률이 높아지고 있어 원인규명과 예방책 마련이 시급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대 고지혈증 환자가 63.7%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당뇨병은 16.8%, 고혈압은 9.1% 늘었다. 여학생의 초경이 빨라지면서 이와 관련한 질병도 늘고 있다. 심평원 자료뿐만 아니라 당뇨병학회 등 각종 성인병 관련 학회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이미 30대가 아니고 20대와 10대에도 성인병이 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본론으로 돌아가서 성인병이란 40대 이후의 만성 대사성질환을 말하는데, 신체의 모든 장기와 기능은 나이가 들면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쇠퇴하기 마련이다. 단지 저하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물론 최근에는 노화 속도를 늦추고 노화 과정을 거스르려고 하는 항노화·역노화의 시도는 있지만, 현재로서는 노화를 얼마나 늦출 수 있는지와 속도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노화 과정을 살펴보면 호르몬 분비의 감소와 각종 호르몬의 불균형이 관찰된다. 필자는 사람이 늙는 것은 호르몬이 늙기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성인병이라는 명칭은 오류이다. 본질은 대사증후군이나 인슐린 저항성 등 시간이 흘러 호르몬이 불균형해지면서 발생되는 병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다소 길지만 ‘나이가 들어 발생되는 만성 호르몬 불균형에 의한 대사질환’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한 의미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성인병이 성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발생하는 현상을 이해하기가 수월해진다. 그것은 대사적 노화가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뇨병도 예전에는 소아형 당뇨병, 성인형 당뇨병이라고 분류했다. 소아형당뇨병은 유전적인 이유로 생기고 인슐린 치료가 필요한 당뇨병이라고 해서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이라고 불렀다. 성인형 당뇨병은 40대 이후 성인에서 발병하고 후천적인 생활습관의 문제가 원인이며 대부분 인슐린 치료가 필요 없는 당뇨병이라 해서 ‘인슐린 비의존형 당뇨병’이라 했다. 그러나 연령에 따른 당뇨병의 분류와 병인적 특징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인슐린 의존형 당뇨병을 1형 당뇨병이라고 하고, 인슐린 비의존형 당뇨병을 2형 당뇨병이라고 한다. 소아에서도 2형 당뇨병이 늘고 있고 성인에게서도 1형 당뇨병이 발생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성인병이라는 명칭보다는 만성 대사성질환, 또는 대사증후군, 좁혀 말하자면, 당뇨병, 고혈압, 고지혈증 등이 현재 젊은 연령층에서 급증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특히 건강과 질병에 있어서 흔히들 말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젊음을 건강한 정신과 육체로 정의하지만, 연령적으로 젊은 사람이라 해도 대사증후군이 발병할 수 있고, 연령이 높은 성인이라 해도 대사증후군에서 자유로운 사람도 있다. 주민등록상 나이가 아니라 생물학적 호르몬 나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청년 노인, 노인 청년?

산업화, 서구화 : 스트레스와 식생활 변화가 성인병을 낳는다

그렇다면 왜 시간의 경과를 거슬러서 이러한 질환들이 젊은 사람들에게 생기는 것일까? 결국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적 환경의 문제가 신체 기능이 노화되는 것을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성인병 발병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식사, 운동, 스트레스 등이다. 이 요인들은 모두 호르몬 건강에 문제를 일으킨다. 현대사회는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걷기보다는 차를 타고 다니고 너무 바빠서 제대로 운동할 시간이 없다. 특히 서구화된 고칼로리·고지방 식단은 호르몬의 균형에 좋지 않다. 게다가 인스턴트식품 섭취가 일반화되었고, 회식이 많고 폭식하거나 빨리 먹고, 때로는 식사를 거르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호르몬 균형을 파괴한다. 또 젊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회다. 스트레스가 호르몬의 균형을 깨뜨리고 불면에 시달리게 해 성인병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평균수명이 늘어 70대 이상 노인이 많은 초고령화 사회다. 어차피 이들은 성인병을 가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러한 현상이 가속화되면 젊은 성인병 환자층, 건강한 낀 세대, 나이가 아주 많은 노인 성인병 환자층의 패턴으로 인구분포가 나타날 수도 있다. 마치 쌍봉낙타 같은 모습이다.

그 외 원인 : 환경유해물질, 환경호르몬, 환경성질환

성인병이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하는 대사질환이라고 정의한다면 최근 산업화에 따른 환경유해물질도 원인이 된다. 환경성질환이라고 했던 아토피, 천식 외에도 치매, 부정맥, 동맥경화, 암도 환경성 물질에 의한 내분비교란물질, 즉 환경호르몬에 의해 발생한다고 밝혀졌으며, 환경성질환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환경유해물질로 분류되는 다이옥신, 비스페놀 A, 프탈레이트, 중금속, 미세먼지 등이 새롭게 환경성질환으로 정의되는 당뇨병, 갑상선 질환 등 만성 대사성질환의 유병률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최근 이런 측면에서도 모든 인구에서 성인병이 늘고 있으며, 특히 젊은 층에서 성인병이 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환경에서 성인병이 빨리 나타나는 이유는 유전적 요인,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 정도, 다른 사람보다 나쁜 생활습관으로 호르몬 기능을 빨리 소모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전적 요인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조기에 성인병을 진단하고 유해물질에 대한 노출을 피하며 생활습관을 교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젊어서 오히려 더 서러운 이유

모든 성인병은 합병증 문제를 일으킨다. 합병증이 발생하면 노동력을 상실하고 간병비용이 들어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된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벗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

송강 정철의 시조에서 알 수 있듯이 늙으면 서럽다. 성인병은 늙어가면서 직면하는 신체기능의 노화에 부가하여 합병증이라는 짐을 지게 되는 것이 큰 문제다. 그러나 젊은 성인병은 노인의 경우와 달리 합병증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사회적 부담 기간이 길어지고 막대한 치료비 지출 또한 문제 요소다. 젊은 성인병의 합병증이 더 심각한 이유는 우선 젊은 층은 1) 진단을 잘 안 한다. 그래서 2) 진단이 늦어진다. 3) 진단을 받고서도 적극적으로 관리하질 않는다. 4) 합병증은 시간의 축적이 필요한데, 젊을 때 성인병이 생기면 더 오랜 시간 유병자로 살아야 하고 관리하지 않은 채 방치한다면 더 큰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젊어서 합병증이 생기면 사회적으로 만성 대사성질환자가 증가하고 평균수명이 긴만큼 유병 시기가 길어 사회적으로도 더 많은 환자, 게다가 합병증이 동반된 환자들 때문에 국가경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젊을수록 미래를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자, 젊다고 방심하지 말자’는 성인병에 꼭 맞는 말이다. 젊으니까 대사증후군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생각은 버리고 가족력이 있는 고위험군은 조기에 진단하고 예방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개인적 차원의 예방법 : 스스로 진단하려는 자세를 갖자. 개인적 차원에서는 건강검진을 주기적으로 하고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금주, 금연, 균형 잡힌 식사, 유산소·근력 운동, 충분한 수면과 스트레스 피하기 등을 꾸준히 실천하고 가족들 간에 관심을 갖고 응원해주어야 한다.

사회적 차원의 예방법과 대응책 : 개인에게 자가 진단을 지원하는 사회적 제도와 분위기를 형성하고 주기적으로 진단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건강한 생활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사회에서 체육시설을 확충해 건강한 생활습관 유지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단체급식에서 단순한 영양식 외에도 고위험군에게는 위험도에 따른 장기적 예방 목적의 식단 제공과 수시 모니터링 등 시스템 구축도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경교란물질에 의한 내분비 교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회피하는 방법도 필요하겠지만, 결국은 사회가 환경유해물질을 저감하려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특히 민감성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서 예측하고 예방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미래 의학은 5P의 시대라고 한다. 정확한 진단(Precision), 예측(Prediction), 예방(Prevention), 맞춤형(Personalization), 참여형(Participation) 의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개인의 유전자, 호르몬, 라이프로그, 영양소, 마이크로바이옴, 식단, 운동 등 생활습관이 대사증후군의 발병에 미치는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예측 모델을 통한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예방과 대응책이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요즘 인공지능의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이 모든 사항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해결책은 AI가 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지 오웰이 말한 부정적 빅브라더가 아니라 긍정적 빅브라더가 대사증후군의 예방과 관리를 도와주는 친근한 빅프렌드로서 동반하는 미래 건강 시대를 꿈꾸어본다. 친절하고 스마트한 AI 기반의 통합적인 디지털 헬스케어가 성인병 예방과 관리에 해답을 주리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