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미래를 책임질
사람을 세우는
연세의학교육

글 안신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교수

발전하는 의학과 급변하는 의료

의학 발전이 눈부시다. 의학 지식이 두 배로 증가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학지식배가시간(medical knowledges doubling time)’이라 하는데, 19세기에는 150년이었으나, 2020년 기준 73일로 계산되었다. 기하급수적인 증가이다. 이는 과학으로서 의학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인간 유전체(genome)를 분석하는 최초의 연구인 Human Genome Project가 1990년 10월에 출범해서 2003년 4월에 완성되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일본의 20개 대학 연구진이 공동으로 노력해서 이루어낸 결과였다. 그러나 요즘의 차세대염기서열검사(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 검사)는 3~4주면 질병 관련 유전체를 분석해낸다. 유전체학의 발전에 더하여 데이터과학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은 각 개인의 임상 양상과 유전체 특성을 결합해서 진단하고 치료하는 등 개인별 맞춤형 의료를 가능하게 했다. 예를 들어, 항암치료 성공률과 암환자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표적치료(targeted therapy)는 암세포의 특정 단백질이나 유전자변이를 파악할 수 있게 됨으로써 가능해진 결과이다.

이러한 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전 세계는 COVID-19의 세계적인 유행이라는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었다. 2023년 5월 5일에 WHO가 COVID-19 응급 상황의 종식을 선언했고, 한국 정부도 지난 5월 11일 코로나 사태의 종식을 선언했으나 그 위세가 완전히 꺾인 것은 아니다. 두려운 것은 또 있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에 따른 생태계의 파괴적 변화 등에 기인해 또 다른 세계적인 전염병이 가까운 시일 내에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한편 COVID-19로 인한 질병의 중증도와 사망률은 국가마다 다르게 나타났다. 본질적으로 생물학적 특성이 동일한 바이러스 질환이 각기 다른 질병 양상을 초래하는 것은 각 국가의 의료보장체계의 효율성 또는 실제적인 보장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발전하는 의학과 급변하는 의료는 미래 의료인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에 대해서 대비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교육 환경의 변화

폭증하는 의학 지식을 고려할 때 의과대학 교수는 필요한 지식을 다 전달할 수 없다. 의학의 발전과 변화에 따라 첨단 지식의 반감기가 짧아지고 있어 학생들은 계속 달라지는 최신 지식들을 확인해 알아야 한다. 한편 교육이 이루어지는 시공간은 학교를 넘어 디지털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Coursera, edX 등 공개 플랫폼에 의학교육 과정이 제공되고, Lecturio 또는 ClinicalKey와 같은 의학교육 전문 디지털플랫폼이 구축되고 있으며, 하버드 의과대학의 HMX 등 의과대학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교육 플랫폼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에 더해 발달한 검색 알고리즘은 전문가들의 전문 지식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검색해 제공한다. Google, Youtube라는 회사 이름이 googling과 youtubing과 같은 동사 개념으로 쓰이는 것은 지식 소통에 대전환이 일어났음을 대변한다. 학습자들은 이런 플랫폼들에서 세계적인 학자들의 강의를 시공간을 초월해서 들을 수 있게 됐다. 더구나 COVID-19 대유행은 의학교육을 포함한 교육의 디지털전환을 가속화했다.

의학교육의 혁신

분명해진 것은 우리의 의학교육이 지식 전달 위주로 이루어지는 교수 강의를 학생들이 듣고 암기하는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으면 현대의학의 발전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은 적극적인 자기주도적 학습자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검색하는 능력이 필요하고, 검색된 정보의 적정성을 판단해서 적용하고 추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학습에 필요한 강의와 정보는 강의실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공부할 수 있도록 제공되고 있다. 강의실에서는 학습주제와 관련해 제시된 임상증례 또는 문제를 해결하는 팀바탕학습이 표준화된 교수 모델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동시에 현대의료는 팀바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학습과정도 팀바탕 접근을 구현하는 설계가 필요하다. 연세의대가 학점과 등수가 없는 절대평가제도를 채택한 중요한 이유가 동료들과 불필요한 경쟁을 막기 위해서이다. 씨름해야 할 대상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며, 발전을 위해 경쟁해야 할 대상은 더 넓은 세상에 있다. 이러한 교수 모델을 적용했을 때 학생들의 학습 성과가 우수했으며, 이 시대에 필요한 역량들을 더욱 확실히 획득할 수 있다는 결과들이 확산에 힘을 더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강의 없는 의과대학, 강의여 안녕’과 같은 선언들이 교육과정 혁신과 연관된 정책결정과 더불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의학교육을 선도해온 연세의대

연세의대는 1885년 우리나라 서양의학의 문을 열었으며, 1908년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 의사 7명을 배출했고, 1914년에는 국내 최초로 인턴 수련제도를 실시했다. 1971년 의학교육 발전을 위해 교육계획위원회를 구성했고, 1972년 국내 최초로 의학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제정했다. 1996년에는 국내 최초로 실시된 의학교육평가에서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되었고, 같은 해에 의학교육학과를 개설했는데, 이 또한 국내 최초였다. 이후 장기 및 계통 중심의 통합적 의학교육으로 개편하기 위한 CDP2004(Curriculum Development Project 2004)를 시행했고, CDP2013 작업을 통해서 역량 바탕의 의학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절대평가제도를 도입했다. 국내 최초였다. 이는 소모적이고 부정적인 동료와의 경쟁보다는 의사로서 역량을 갖추는 데 집중하도록 평가제도를 개선한 것으로서 의학교육의 새로운 장을 여는 혁신이라 할 수 있다. 당시 국내 의과대학 중 유일하게 이러한 변화를 이루어냄으로써 사회적으로 지대한 관심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2년 한국의과대학-의학대학원협회(KAMC)가 의학교육혁신상을 제정했는데, 그 첫 수상 기관이 연세의대였다. 이후 절대평가제도의 도입과 더불어 학생들을 지도하는 혁신적인 제도인 학습공동체제도 도입 등을 성과로 인정받아 2019년에 재차 수상하게 되었다. 의학교육혁신상을 2회 수상한 의과대학은 40개 의과대학 중 연세의대가 유일하다. 연세의대의 의학교육이 세계적으로도 선도적인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2019년 연세동곡의학교육원을 설립하고, 산하에 교육과정개발센터, 교육평가센터, 교수개발센터 및 교육연수센터를 두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또 2022년 추가로 기부된 동곡사람세움기금 50억 원으로 향후 10년간 의학교육에 집중적으로 기여할 동곡교수제도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서 작년에 발표된 THE 세계대학순위에서 보건의료 분야에서 연세의대가 32위로 평가되었으며, 국내 1위에 오르는 성취를 거두었다. 특히 교육 분야는 연구 분야와 더불어 세계 12위로 평가되었다. 이러한 성과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지속되는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더욱 집중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21년부터 준비해온 CDP2023 교육과정개편을 통해 기초 2년, 임상 2년의 전통적인 2 Phase 구조를 기본의학 1.5년, 핵심공통임상실습 1년, 학술심화와 선택교육과정 1.5년이라는 3 Phase 구조로 바꾸었다. 기초와 임상교육을 압축적으로 진행하되, 기초와 임상의 통합을 강화하고 필수역량은 모든 학생이 예외 없이 갖추도록 교육할 것이다. 아울러 실제로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학술심화과정을 한 학기 동안 제공하는데, 이는 국내 최초의 시도이다. CDP2013에서 절대평가제도와 함께 도입된 연구 멘토링제도는 학생들의 연구 참여를 활성화했고, 논문 발표도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새롭게 도입될 학술심화과정에서도 이러한 성장이 지속되도록 지도할 것이다. 4학년 과정에는 다양한 선택과정을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진로 개발을 모색할 수 있다.

새로운 의학교육을 담아낼 집,
의과대학 신축계획

이미 알고 있듯이 의과대학 신축계획이 진행 중이다. 1962년에 봉헌된 현재 신촌 지역의 의료원캠퍼스는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였다. 미국 CMB의 후원으로 1961년 완공된 의과대학 건물(현 본관)은 당시 최신식 건물이었지만, 교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강의 중심의 교육방식에 근거해 설계된 것이다. 그 후 의과대학 신관을 건축하는 등 공간을 확대해왔지만, 노후된 건물과 비좁은 공간은 새롭게 변화하는 의학교육의 개념을 담을 수 없고 폭발하는 연구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의학교육의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 길목에서 적어도 향후 50년을 담아낼 교육과 연구의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의과대학과 의료원은 위대한 미래(The Great Future)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의 의대 건물이 미국 CMB의 후원으로 건축되었듯이 의학교육의 미래를 위한 의과대학 신축에 동문들과 독지가들의 참여가 절실하다.

연세의학의 세계화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연세의학교육의 세계화이다. 연세의료원 제중원보건개발원의 국제의학교육개발사업단은 의학교육학교실과 더불어 개발도상국가의 의학교육과 연구역량을 강화하는 다양한 사업을 진행 중이다. KOICA 지원사업을 비롯한 다양한 ODA 사업과 영원무역과 함께 추진하는 방글라데시 치타공 의료복합단지(종합병원 및 의과대학, 간호대학 건립)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또 1993년 에비슨 박사 내한 100주년을 기념해 시작된 몽골의료선교사업을 필두로 선교지의 의사들을 교육하는 사업들도 추진하고 있다. 학부 교육뿐만 아니라 대학원에서 외국인 학생을 초청하여 그들이 자국의 의학교육과 연구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사람을 세우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조선의 미래는 조선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믿음으로 우리를 가르쳐 세웠던 에비슨 선교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오늘날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것이며, 이는 우리가 받은 사랑의 빚을 갚는 실천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은 연세의료원과 연세의대의 국제적인 위상을 크게 제고하는 일이 되기에 가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안신기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심장내과 교수를 역임했고, 연세대학교에서 의학교육을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학교실 교수로서 미래 의사와 의과학자 양성에 힘쓰는 한편, 연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원 원장으로서 연세대학교의 사회적 참여와 국제사회 보건의료에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