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바현 가시와시. 오래된 목조주택이 많아 옛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네다.

퇴근길 어둠이 내려앉은 지역의료지원센터의 작은 2층 건물에 희끗희끗한 흰 머리가 살짝 보이는 의사 선생님, 환하게 미소 짓는 간호사 선생님, 배낭을 메고 자전거로 서둘러 도착한 케어 매니저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노인주택에 사는 78세 칸다 씨 아내 상담요청에 따른 모임이다. 칸다 씨는 최근 부쩍 배회가 심해져 아내의 걱정이 높아졌다. 평소에 칸다 씨를 돌보고 있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퇴근길에 잠깐 모여 이야기를 해보자고 오늘 만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얼마 전 처방한 약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지 궁금했고, 간호사는 어르신이 적절히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치매 증상이 더 악화하지는 않았는지 그동안 살펴봤던 내용들을 설명했고, 케어 매니저는 요양보호사의 방문시간을 좀 더 빈번하게 조정해서 어르신의 배회 현상을 줄일 수 있을지, 혹시 배회하는 칸다 씨를 발견했을 때 이웃들에게 어떠한 대처를 요청할 것인지 등을 이야기하느라 훌쩍 2시간이 흘렀다. 치매 증상이 있는 칸다 씨가 가족들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집에서, 동네에서 가능한한 오랫동안 생활할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이다.

살던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기

위의 사례는 일본이 지역포괄케어시스템(커뮤니티케어) 구축 과정에서 지역케어 회의를 실시하는 내용을 각색한 것이다. 이미 총인구의 약 30%가 65세 이상 노인인 일본사회에서나 필요할 것 같던 지자체의 돌봄서비스 추진 노력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도 의미 있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 마을, 우리 동네. 흔히 전문가들은 ‘지역사회’라는 어려운 말로 표현하지만, 지역사회는 지금까지 우리가 익숙하게 살아온 우리 동네를 의미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많은 사람이 직장을 따라, 좀 더 좋은 생활권을 고려해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동네를 옮겨 다니기도 하지만, 누구나 내 가족, 이웃과 함께 살아온 동네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자녀, 친구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온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아가기. 이것이 우리나라가 추진하고 있는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의 가장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내게, 우리 부모님에게, 우리 가족에게 돌봄이 필요해진다면, 과연 우리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해봤을 이러한 과제를 안고 정부와 지자체,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관련 기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그 지원망을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초고령사회, 돌봄도 달라져야

통계청(2022)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2025년에 초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고령인구가 20%)로 진입하고, 2035년에는 고령인구가 30.1%, 2050년에는 43%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또 노인실태조사(2020)에 따르면 응답자의 56.5%가 거동이 불편해져도 재가서비스를 받으며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 계속 살기를 희망했고, 31.3%는 노인요양시설 등 시설을 이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동이 불편하여 돌봄이 필요한 상태가 되어도 현재의 집에서 계속 살아가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1) 낙상 위험이 없도록 안전한 주거환경이 구축되어야 하고 2) 필요에 따라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가 집으로 방문하여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어야 하며 3) 요양보호사 등 돌봄인력 도움으로 식사 등 일상생활 지원도 함께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돌봄이 필요한 대상자를 중심으로 맞춤형 의료-돌봄서비스의 통합적 제공체계가 지역 단위에서 구축되어야 한다.

정부는 그동안 건강보험제도 보장성 확대,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발전 등을 통해 지역 단위 의료-돌봄서비스를 확대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적 발전을 통해 의료-돌봄서비스가 대상자 맞춤형으로 더욱 원활히 제공될 수 있도록 건강보험-장기요양보험-지역보건복지서비스 등 각 제도권의 검토뿐만 아니라 지자체 총괄기능 강화, 관련 공공-민간기관 간 협업이 필요하다는 논의도 함께 진행해왔다.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의 시작

이러한 필요성을 기반으로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보건복지부는 재가 의료-돌봄서비스를 확충하고 연계 기반 운영체계 구축을 위한 정책을 마련했다. 2018년 11월 노인 대상 커뮤니티케어 추진 로드맵을 발표하고 2025년까지 커뮤니티 케어 추진체계를 보편화하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1차적으로 16개 지자체에서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2019~2022년)’이 운영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도출된 한계점 등을 보완한 후 2023년 7월부터 12개 지자체1) 에서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2023~2025년)을 추진하고 있다.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은 돌봄이 필요해도 요양병원과 요양시설 이용 시기를 최대한 늦춰, 되도록 오랫동안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역 내 의료-요양-건강관리-일상생활 지원-주거 등의 서비스를 수요자 맞춤형으로 연계·제공하는 모델을 개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특히 75세 이상이면서 병원 퇴원 이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의료-돌봄서비스 이용이 필요한 자, 장기요양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지만 추가적인 의료-돌봄서비스가 필요한 자 등에게 맞춤형 의료-돌봄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지자체-국민건강보험공단-보건소 등 관계자가 함께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 지자체 대상을 수상한 충청북도 진천군은 지역 내 종합병원에서 퇴원한 환자가 집에 돌아가서도 일정 기간 의료-돌봄서비스가 필요한 경우 진천군청 통합돌봄 전담팀이 병원 관계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건소, 복지기관 등과 협업하여 퇴원 이후 안심하고 재가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맞춤형 통합 지원을 실시한다.

안산시의 ‘온마을 돌봄안전망’

안산시는 2019년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 수행 과정에서 추진해온 케어안심주택사업을 고도화해 ‘온마을 돌봄안전망’을 구축하고자 노력중이다. 권역 단위 케어안심주택-종합사회복지관 협업을 통해 돌봄매니지먼트체계를 구축해나가는 특화사업이 계획되어 있다. 즉, 25개 동을 4개 권역(노인케어안심주택 소재지 및 무한돌봄네트워크 권역)으로 나눠 케어안심주택 내 커뮤니티 공간(온마을 이음센터)에 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가 근무하며 돌봄거점센터 역할을 담당하되 시청, 동주민센터와 유기적인 연계체계를 구축하는 모델로 운영계획을 설정했다.

노인케어안심주택 거점혐 온마을 돌봄사업

내 집에서 돌봄서비스를 받으며 사는 노후

“돌봄이 필요해도 우리 동네에서 함께 살아가기”. 이는 전문가 한 사람이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동네의 주인인 주민들이 진정성 있게 함께 고민하고, 전문가가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나갈 때 우리 동네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인 의료-돌봄 통합지원 시범사업을 통한 한국형 운영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12개 지자체 노력이 가까운 시일 내에 전국 229개 지자체에 뿌리내려 돌봄이 필요해도 내 집에서 살아가는 노후의 희망이 누군가 이야기가 아닌, 내 부모님과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내 가족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그 첫걸음이 지금 우리 집 문밖에서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