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강성지 웰트(주) 대표이사

로켓배송을 이용하고 나서부터 물건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가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 온라인쇼핑몰이 생긴 초기에는 판매 사기도 많았고, 배송에 수일이 걸리기도 해 급하거나 비싸거나 물건을 직접 보고 사야 하는 경우는 오프라인 쇼핑을 선호했다. 그러나 검증된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몇 시간 만에 배달해주는 쇼핑몰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제 마트에 가기 위해 외출 준비를 하는 과정이 귀찮게 느껴진다.

이러한 변화는 의료계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카카오, 네이버 같은 대형 플랫폼 기업들과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한 대형 병원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 진출을 선언하거나 관련 조직을 세팅하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전 세계적 흐름

미국은 이미 소비자 중심의 재택의료 시스템을 보급하며 디지털 헬스케어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소비자가전쇼)도 행사 주제로 자율주행, 우주, 친환경 기술과 함께 디지털 헬스케어를 선정했고, CES 55년 역사 최초로 제약-의료기기 회사 회장이 행사 시작을 알리는 기조연설을 했다.

2021년 미국에서 이루어진 영상통화 중 4분의 1이 의료 목적의 소통이었으며, 의사들이 쓰는 전자 차트에는 환자에게 거는 영상통화 버튼이 기본으로 탑재되어 병원에 환자가 없다고 한다. 바디프랜드는 심전도와 체성분을 측정하는 안마의자를 선보였고, 삼성전자는 자율주행 자동차 안에서 측정 가능한 건강 모니터링을 보여주었다. 전 세계 기업들이 저마다 기술을 뽐내는 와중에 디지털 헬스케어는 모든 곳에 있다.

의료진을 돕는 새로운 의료 도구

디지털 헬스케어는 그 속성이 온라인쇼핑몰과 비슷하다. 우선 오프라인보다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데 그리 큰돈과 노력이 들지 않는다. 현재 원격의료 시장만 봐도 진입장벽이 낮아 수많은 회사가 탄생하고 있다.

하지만 일단 고객이 몰리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프라인에서는 미처 알 수 없었던 고객의 동선이나 관심사가 온라인에서는 전부 족적으로 남는다. 진료실에서 나누던 의사와 환자의 대화도 저장과 전송을 하기 위해 디지털신호로 변환되고, 스마트 의료기기와 웨어러블 기기들도 환자의 정보를 병원 밖에서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기존에 버려지던 수많은 정보가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데이터로 바뀌는 것이다.

이러한 데이터가 모이면 인공지능이 고객 한 명 한 명에게 맞춰 소비자 중심으로 서비스를 최적화한다. 아마존이 고객의 구매 패턴을 분석하여 부모보다 먼저 딸의 임신을 예측하고 임신부에게 필요한 물품을 추천한 일화는 유명하다. 더불어 아마존은 이러한 물건을 미리 소비자 주변의 물류센터로 옮겨 주문이 들어오면 빠르게 배송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는다.

사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과정은 쇼핑보다 반복적이고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태초부터 의학은 이를 관찰하여 정리하고, 조금 더 나은 치료를 고민해온 학문이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던 의료의 모든 과정을 온라인으로 전환함과 동시에 의료를 환자 중심으로 최적화하여 발전해나간다. 컴퓨터가 환자 정보를 바탕으로 질병 위험을 예측하고 적시에 필요한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하여 더 큰 병이 생기지 않도록 돕는, 의료진의 새로운 도구인 것이다.

의료서비스의 질과 경험에
집중해야 할 때

디지털 헬스케어가 도입되면 외래에서 가벼운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내원하던 환자들은 디지털 헬스케어를 이용해 가장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대상이기에 매번 병원에 올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대신 한적해진 병원에서 일하는 최고의 의료진이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활용한 혁신적인 연구를 통해 의학 발전을 이끌고 수술과 입원이 필요한 중증 환자들에게 더 집중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또 환자 차트는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에서 통합 관리되기에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단골 병원처럼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고, 이는 앞으로 병원이 ‘의료서비스의 질과 경험’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건강 문제를 예측하는
내비게이션의 역할

미래 의료를 이야기할 때 항상 등장하는 4P가 있다. 예방의료(Preventive), 예측의료(Predictive), 개인맞춤의료(Personalized), 참여의료(Participatory)가 그것이며, 디지털 헬스케어는 4가지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수단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에도 병원은 존재할 것이며, 의약품, 의료기기, 보험시장 또한 여전히 건재할 것이다. 환자 입장에서 달라지는 것은 내비게이션을 찍어보듯이 앞으로 일어날 건강 문제를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게 되어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헬스케어 내비게이션’으로 인해 수많은 비효율이 개선되어 보험료가 낮아지고,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고 약을 먹는 시점도 늦춰지며 모두가 조금 더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게 된다.

미래 의료를 선도할 디지털 헬스케어

코로나19로 인해 디지털 헬스케어의 도입은 더 빨라졌다. 특히 코로나19에 감염된 고위험 집중관리군은 정부에서 스마트 의료기기를 나눠주고, 매일 원격으로 관리하며 필요한 약은 배송하여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원격진료를 경험한 국민이 벌써 370만 명을 넘어섰고, 대부분 ‘편하고 좋았다’는 반응이다. 이렇게 한번 형성된 긍정적인 경험은 역행하여 되돌리기 어렵기에 코로나19 이후 본격적인 디지털 헬스케어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등장 이래 디지털은 이미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고 개선해왔고,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그 흐름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검색(구글), 쇼핑(아마존), 콘텐츠(넷플릭스), 자동차(테슬라)에 이어 이제 헬스케어가 남았다. 디지털 갑옷으로 무장한 젊은 의사들이 미래 의료를 선도하여 의학 발전과 인류 건강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

강성지

민족사관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 공중보건의사로 디지털 헬스케어 정책을 담당했다. 이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헬스개발그룹을 거쳐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회사 웰트(주)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외래교수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