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언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
·솔브케어코리아 사장

1990년대 초반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오늘날처럼 놀라운 잠재력을 보이며 진화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온라인 연결이라는 단순한 개념이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등장한 초기에는 많은 사람이 대부분의 통신을 전통적인 우편 서비스와 유선전화에 의존했다. 당시 인터넷 탄생의 중요성을 간과한 모든 사람을 비웃기는 쉽지만 웹3.0이 코앞에 다가온 지금 우리는 같은 실수를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인터넷이 웹1.0, 웹2.0, 웹3.0으로 계속 진화하는 것처럼 헬스케어 시스템도 진화한다. 이 글에서 웹의 진화에 따라 헬스케어와 병원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하고,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웹의 진화와 병원

웹1.0 시대

1990년대에 시작해 2000년대 초기까지 이어진다. 웹1.0의 콘텐츠는 고도로 분산되어 있었다. 사용자가 고전적인 하이퍼링크 기술을 사용해야만 탐색할 수 있었으며 사용자와 데이터 간 상호작용만 가능했고 다른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은 불가능했다.

헬스케어 1.0

전자의무기록이 처음 도입됐고 각 병원은 종이 없는 병원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병원 내부망(인트라넷상)에서 이루어졌고 외부 사용자와의 상호작용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웹2.0 시대

2000년대 중반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시대를 말한다. 각종 소셜미디어와 구글, 메타(페이스북) 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전성시대다. 플랫폼상에서 다른 사용자와 상호작용이 가능해졌다. 빅테크 기업들은 플랫폼을 제공함으로써 물리적·기술적 인프라를 통제하고 규칙(거버넌스)을 설정했다. 사용자, 즉 소비자와 서비스 제공자들은 사용에 따른 엄청난 편리성과 효용성 때문에 기꺼이 빅테크 기업의 지배규칙을 따랐다. 따라서 승자독식 시대가 전개되었으며 수많은 사용자의 권리와 보상 문제가 대두되었다.

웹3.0 시대

웹2.0에서 중앙 집중식 서비스가 표준이 되고 이에 따른 거대 플랫폼 기반 정보통신기업에 의한 웹 기반 자본주의 독점의 폐해를 사람들이 인식하면서 새로운 대안으로 웹3.0이 등장했다. 웹3.0에서는 웹2.0의 중앙 집중형 생태계와 달리 분산형 환경을 구축하며 사용자의 데이터 통제를 위한 중앙권한의 간섭을 배제한다. 최근 등장한 블록체인, 암호화폐,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DeFi 등은 모두 빅테크 기업에 지나치게 집중된 권한을 개별 사용자로 분산 이관한다. 즉, 개별 사용자에게 자신의 데이터에 대한 주권을 보장해줌으로써 더욱 합리적인 생태계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헬스케어 3.0

아직 웹3.0을 본격적으로 적용하는 병원은 없다. 따라서 웹3.0 시대에 병원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웹 3.0 시대의 병원

2022년 CES에서 Abbott사 CEO Robert Ford는 헬스케어와 기술의 융합은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의료서비스는 디지털화, 분산화(탈중앙화), 민주화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에 대한 통제력을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라며 소위 ‘Human Powered Health’ 시대가 열렸다고 주장했다.

중앙 집중식 의료 생태계에서 개인 중심으로의 대전환을 예고한 것이다. 개인화 시대의 의료 생태계는 어떤 모습일까? 사실 전혀 새로운 내용은 아니며 이미 ‘환자 중심 의료’ 등에서 많이 논의되어왔다. 웹2.0 시대에는 환자가 헬스케어 생태계 이해당사자들 간 관계망에서 소외되었지만 웹3.0 환경에서는 환자가 생태계의 모든 관계망의 중심에 있게 된다(그림 1).

웹3.0 시대에는 빅테크 기업의 절대적 파워가 각각의 사용자로 분산 이관된다. 블록체인 등 기술 발전이 기술 인프라와 거버넌스를 분리할 수 있게 하여 개별 트렌젝션(transaction)에 대한 사용자의 제어 능력을 향상시킨다. 환자는 의사를 포함한 헬스케어 공급자에게 자신의 건강 데이터에 대한 접근권을 통제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게 될 것이다. 아울러 각 개인은 대규모 데이터 독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건강 데이터에 접근하여 데이터를 직접 활용해 자신의 건강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개인화 물결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므로, 변화에 적응하여 지속가능한 병원이 되려면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병원은 웹1.0 시대 핵심 역량인 EMR(전자의무기록)을 상호 운용할 수 있고 변조 불가능하며 환자가 통제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반 분산형 의무기록으로 전환해야 한다. 블록체인 기반 의무기록은 환자 등 사용자의 분산형 신원인증(Decentralized Identification)과 데이터의 무결성, 투명성, 익명성을 유지하기 쉽고 데이터를 공유할 때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할 수 있다.

병원은 그동안의 운영 형태에서 벗어나 네트워크 중심 병원으로 변화해야 한다. 거대 의료기관 설립으로 의료자원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분산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이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의료자원(의사)에 대한 통제력(binding power) 약화는 감수해야 한다. 병원은 의사를 고용할 때 의사의 실력만큼이나 네트워크와 커뮤니티 관리능력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환자가 의사와 병원에 접근하는 방식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대형병원만 세우면 환자가 알아서 모이는 접근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개별화된 접근방식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네트워크가 탁월한 의료진의 확보가 병원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진료 능력이 탁월한 명의들부터 점점 네트워크 기반 프리랜서 형태로 전환할 것이며, 이러한 네트워크와의 협업 능력이 병원의 질과 신뢰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의사들은 점점 온라인과 오프라인, 현실과 가상 세계를 넘나들며 환자를 만나고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따라서 현행 의료법과 상충이 발생하는데 이에 대한 컨센서스를 만드는 것도 시급한 과제이다. 이미 미국과 중국 등지에서 공유 개념을 도입한 병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의료접근권 불평등 해결이 관건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의료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병원은 세상의 흐름인 개인화와 개별화를 거스를 수 없다. 과감한 디지털전환과 탈중앙화, 분산화를 통해 웹3.0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 환자 또는 개인, 의사, 병원, 정부 등 의료 생태계의 모든 이해당사자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의료 시스템을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아울러 코앞에 닥친 의료접근권의 불평등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의료 불평등은 단지 경제적 불평등만이 원인이 아니다. 지리적 문제, 디지털 리터러시 격차, 나이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웹3.0 시대의 장점이 오히려 악이 될 수 있다. 즉, 디스토피아의 서곡을 알리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는 짖어도 마차는 달린다’라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명대사처럼 웹3.0의 폐해를 걱정하고 있는 중에 트위터 CEO 출신 잭 도시는 웹5.0을 말하고 있고 일부 성급한 사람들은 웹6.0을 논하고 있다. 정말 따라가기조차 힘든 세상이다.

이언

가천대 길병원 신경외과 교수.

이언 교수는 파킨슨병, 간질, 떨림 치료 분야에서 35년 이상의 임상 진료 경험을 가진 국내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 중 한사람이다. IT기술을 헬스케어에 접목하는데 일찍이 관심을 갖고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가천대 AI헬스케어 플랫폼 연구소장, 가천대길병원 인공지능 기반 정밀의료추진단장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