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환자의 남은 생을
위하는 완화의료센터
한동안 잘 사는 것, 즉 웰빙(Well-Being)이 화두였다. 하지만 이제는 웰다잉(Well-Dying)의 시대로,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늘어나고 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완화의료센터는 말기 환자가 남은 생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글 편집실 / 사진 송인호
길지 않은 국내 호스피스 역사
국내 호스피스의 역사는 60년 정도 되어가지만, 여전히 죽음을 기다리는 곳이라는 인식이 많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말기 환자들의 호스피스 이용률이나 가정에서 임종하는 비율은 낮은 편이다. 하지만 최근 ‘품위 있는 죽음’, ‘웰다잉’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증가했다.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통증과 증상 완화, 신체적·정신적·사회적·영적 지지를 제공함으로써 환자의 존엄성과 편안함을 유지하고, 호스피스 완화의료 대상 환자와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내에서도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정책적 지원 및 호스피스 수가 신설, 호스피스 기관 등록 등이 시행되면서 환자들이 양질의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2022년 시범 사업을 시행한 후 2023년 4월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지정됐고, 환자들에게 체계적인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완화의료센터를 설립했다. 현재 가정의학과 심재용 교수가 완화의료센터장을 맡고 있고, 가정의학과 손다혜 교수, 김선형 호스피스 전담 간호사, 양승권 사회복지사가 완화의료 상담팀으로 함께하고 있다.
여러 과에서 말기 환자나 임종을 앞둔 환자가 있으면 호스피스를 위해 가정의학과에 협진을 요청한다. 그러면 완화의료 상담팀이 환자와 면담을 진행하여 신체적·정신적·사회적·영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평가한다. 환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돌보기 위해 원내 원목실 및 말기 환자를 돌보는 종양내과, 소화기내과, 감염내과, 호흡기내과 의료진도 함께 완화의료위원회에 소속되어 도움을 주고 있다.
보호자 역시 호스피스의 영역
국내 호스피스 기관은 입원형·자문형·가정형 등 세 가지 형태의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입원형은 완화의료 병동을 따로 보유해 호스피스 환자들만 모여 호스피스 케어를 받고, 자문형은 환자가 기존 주치의 앞으로 입원해 있으면서 자문과 협진 형태로 호스피스 상담을 받는 것이다. 가정형은 의료진이 주 1~2회 직접 환자 가정을 방문해 통증 조절과 환자의 신체적 증상 조절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다. 이 중에서 자문형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강남세브란스병원 완화의료센터는 환자가 원하는 경우 주치의를 호스피스 담당 교수인 가정의학과 심재용·손다혜 교수로 변경해 적극적인 호스피스 케어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추후 새병원이 건립되면 완화의료 병동을 개설하고 가정형 서비스까지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작년부터 현재까지 환자 250여 명이 완화의료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았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에서 환자만큼 중요한 것이 보호자다. 가장 가까이에서 환자를 지켜보는 보호자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심지어 죄책감을 느끼는 보호자도 있을 정도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완화의료센터는 보호자 면담을 진행해 심리적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정신적 지지를 보냄으로써 큰 위로가 되어준다. 환자 임종 후 보호자를 관리하는 것도 호스피스의 영역이다. 임종 후 50일과 100일에 안부를 묻는 편지를 보내 보호자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환자가 임종한 후에도 종종 병원에 들러 근황을 전해주는 보호자가 있을 정도로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한다.
완화의료센터가 나아갈 길
환자의 임종을 많이 목격하기에 정서적으로 소진이 크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완화의료센터 구성원들은 ‘소진’은 결국 환자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구성원들은 소진관리 프로그램과 문화 활동 등으로 재충전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완화의료센터는 현재 자문형 호스피스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지만, 인력이 확충되고 좀 더 노하우가 쌓이면 직접 집으로 방문하는 가정형 호스피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환자들이 가장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고 또 가족 모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는 장소는 병원이 아니라 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10명 중 7명이 의료 기관에서 생을 마감한다. 의료적 처치나 간병의 어려움, 집에서 임종할 경우 보호자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등이 있어 의료기관에서 임종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정형 호스피스가 확대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국내에서 가정형 호스피스를 제공하는 기관은 드물기 때문에 강남세브란스병원 완화의료센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는 완화의료센터 구성원들. 이들 덕분에 오늘도 말기 환자와 보호자들이 존엄한 마무리를 준비할 수 있다.
호스피스는 환자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재용 센터장
환자를 대할 때는 동병상련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도 환자가 될 수 있고, 환자의 보호자가 될 수도 있기에 결국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미래의 나를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기 환자들이 완화의료센터를 찾지만 금방 임종할 거란 마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시간을 절대적으로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고 환자와 더 나눌 수 있고 함께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호스피스는 환자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는 해줄게 없다고 느낄 때 할 것이 많아집니다. 남은 기간이 얼마이건 간에 그 기간에도 얼마든지 좋아질 수도 있고, 환자가 그 시간 동안 하고 싶은 걸 마지막으로 할 수 있다면 그게 환자를 위해서 좋은 것이 아닐까요? 삶의 양보다 질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관점으로 치료하는 것이 호스피스입니다. 새병원이 건립되면 완화의료 병동을 개설하고 가정형 서비스까지 확장해 더 많은 말기 환자의 존엄한 마무리를 도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