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의 병원 건립
방안 제시와 진행

서울특별시는 1970년을 전후해 한강 남쪽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가 1965년에, 제3한강교(현 한남대교)가 1969년에 개통됐고, 고속도로도 개통되기 시작했다. 한강 남쪽은 공장지대인 영등포를 제외하고는 농촌이었다. 영등포 동쪽을 영동지역이라 했는데, 1973년에 도봉구와 관악구, 1975년에 강남구, 1977년에 강서구를 만들었다. 영동프로젝트가 구체화된 것도 이 무렵이다.

 유승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1980년 5월 진행된 병원 기공식 행사장

영동프로젝트의 구체화

강남구 도곡동에 500병상 규모의 병원을 건립하려는 계획(안)을 보건사회부에 제출했는데, 신현확 장관이 벌컥 화를 냈단다. 의료원장은 신 장관이 1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한 최재유 동문(1929년 졸업)에게는 조언을 잘 듣는다는 점을 알게되어 최재유 동문을 모시고 신 장관과 병원 건립 면담을 했다. 신 장관은 강남에 건립하려는 병원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고, 경기도 3개 군(성남, 광주, 용인)에 50병상 농촌병원을, 인천 남쪽 공장지역에는 100병상의 산업병원을 건립하도록 의견을 제시하고 승인했다. 이른바 영동프로젝트(The YongDong Health Service Project March 15, 1977)가 구체화됐다.

김효규 의료원장이 영동프로젝트를 총괄하며 필자를 기획관리 실무책임자, 독일에서 수련을 마친 피부과 이성낙 교수와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김광문 교수, 예방의학교실 김일순 교수가 의료전달체계를 담당하도록 했다. 1976년 9월 강남구 도곡동에 대지 23,844㎡(7,213평)를 매입했고, 1977년 봄 군복무를 마친 필자가 전임강사로 복직해 계속하여 영동프로젝트를 담당했다.

1981년 영동세브란스병원(현재 강남세브란스병원) 건축물이 올라가고 있다.

1983.3.9.영동세브란스병원이 1983년 개원한 후 의료진들이 병원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1983년 개원 후 이비인후과에서 환자를 보고 있다.

병원 건립에 걸린 7년 반의 시간

병원 건립과 관련해 경제기획원이 독일 정부와 긍정적으로 의견을 교환했기에 1976년 독일에서 타당성조사단을 파견했다. 조사단은 우리나라 보건의료 형편을 두루두루 꼼꼼하게 살펴보았고, 질문을 계속하면서 의료서비스 현황을 파악했다. 필자는 1977년 당연 적용 의료보험이 시작될 예정이며, 정부 목표인 국민소득 1,000달러,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이 예상되므로 의료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조사단에 설명했다.

1977년 독일에서 영동프로젝트 재정차관 평가단이 방문했다. 영동프로젝트 계획서(1977년 3월)를 상세하게 검토하면서 병원의 내부 시설과 장비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병원 경영에 관해서도 자료를 요청해 필자는 매우 바쁘게 활동했다. 다행히 1974년 은평구 불광동에 있는 가족계획연구원에 컴퓨터 터미널이 설치되었기에 군 근무를 마치고 퇴근해 대형 컴퓨터 사용법을 터득한 바 있어 평가단이 요청하는 병원 건립평가 자료를 추가로 입력해 이튿날 전달하곤 했더니 놀라는 분위기였다.

1978년 계획이 확정되어 도곡동에 영동세브란스(현 강남세브란스) 병원 건설을 시작해 1983년 4월에 개원했다. 독일 재정차관 병원 건립 이야기가 나온 후 7년 반이 걸렸다. 용인과 광주 농촌분원과 주안 산업병원은 1981년 대지를 매입해 이듬해에 착공했다. 참고로 성남군에서는 최염(경주 최부자 16대손)이 병원 건립을 신청하여 승인받았기에 광주와 용인에 농촌병원을 건립했다. 최염은 1982년 연세대 보건대학원에 입학해 병원행정 전공으로 졸업했다.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의료원으로 도약

1983년 4월 개원한 영동세브란스병원은 강남 지역의 의료서비스를 담당하는 종합병원이었다. 이로써 연세의료원은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의료원으로 도약했다. 한 대학이 2개 이상의 부속병원을 가진 조직으로 발전한 것이다. 1976년 원주기독병원과 재단을 합병함으로써 국내 최초로 2개 병원이 되었고, 영동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서 연세의료원은 여러 병원을 갖춘 연세시스템이 되었다.

영동세브란스병원 건립 중에 최억(1948년 졸업, 안과) 교수를 초대 원장으로 임명했다. 1982년에는 양재모 교수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에 취임했다. 개원 후 새 병원에서 근무할 교수직과 행정직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구성될 것으로 예상되어 병원장도 이에 걸맞은 인물로 건의했고 양재모 의료원장은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였다. 1960년 졸업한 김영명(이비인후과)원장이 임명되어 병원은 원활하게 잘 운영되었다.

인천산업병원은 산업의학을 전공한 전문의를 선정해야 해서 군복무 중 미국에서 보건학석사를 마치고 공군 의무감 출신으로 전역 후 1974년부터 예방의학 교수로 근무 중인 문영한(1952년 졸업, 산업보건) 교수를 원장으로 임명했다. 광주분원은 이명진(1964년 졸업, 외과), 용인분원은 심호식(1968년 졸업, 외과) 원장이 임명됐다.

유승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건강보험의 탄생과 발전에 기여하고 병원 경영의 선진화를 학문적으로 뒷받침한 학자. 연세대보건대학원장,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원장, (재)한국의학원 이사장, 대한예방의학회 이사장, 학교법인 유한학원 이사장, 필란트로피 소사이어티 초대 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을 받았으며, 현재 의료 소외계층에 의료비, 약제비를 모금·지원하는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으로서 활발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