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정신과
개척정신으로 일궈온
강남세브란스병원 진료문화

강남세브란스병원이 개원 40주년을 맞았다. 1983년 4월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문을 연 이래 당시 의료의 불모지였던 서울 강남 지역에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전인적인 진료와 선진화된 연세의학을 전파하며 지역주민을 위한 봉사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2009년 2월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교육과 연구, 진료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명실상부한 대학병원으로 성장, 발전해왔다. 개원 40주년을 맞아 강남세브란스병원 6대 병원장을 역임한 지훈상 前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과 이우석 강남세브란스병원 진료부원장의 대담을 통해 강남세브란스병원의 발전 과정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글 편집실 / 사진 송인호

PART 1.

초창기 강남 의료 1번지 시대를 열다

1983년 영동세브란스병원이 문을 열 당시 병원에 대한 인지도나 주변 환경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지훈상 전 연세의료원장 : 1983년 당시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저를 비롯해 주니어 교수들은 세브란스에 대한 자긍심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역사와 전통이 깊은 의료기관에 몸담고 있다는 자부심이 컸던 거죠. 반면 우리 기관이 한단계 더 발전하려면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위기감도 들었던 차에 1987년에 파견 형식으로 영동세브란스에서 순환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이었던 도곡동에 독일 차관으로 지은 병원이라 상당히 외지고 환자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무엇보다 연구시설이 상당히 취약한 상황이라 대학교수들이 꺼릴 수밖에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한번 해보자'고 열심히 독려해주신 김영명 병원장님을 중심으로 젊은 의사들이 의기투합해 뜨거운 열정을 불태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우석 강남세브란스병원 진료부원장 : 의료원장님 말씀 듣고 보니 생각났는데, 1983년 개원 당시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영동세브란스라는 병원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 정도로 당시 우리 병원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훈상 전 연세의료원장 : 열정이 넘쳤던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병원을 알리고 싶었지만 홍보는 전무한 상태였어요. 어떻게 하는지도 몰랐고요. 게다가 같은 이름의 개인병원이 근처에 있어서 환자들이 혼동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우리한테 올 우편물이 그 병원으로 가는 해프닝도 있었어요. 그런 열악한 상황에 직면하니 열정이 더 불타올랐던 것 같아요. 젊은 교수들은 우리만의 차별화된 무언가를 찾아서 의료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실히 심어주려는 의지가 강했어요. 너나없이 뜨겁게 일하던 시기였어요.

어려운 의료 환경 속에서 ‘우리만의 차별화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는지요?

지훈상 전 연세의료원장 : 영동세브란스병원만의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전문성을 키우자, 창조적인 혁신을 하자, 진료 특성화에 집중하자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 병원에는 '고객'이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이 같은 생각을 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어요. 강남 지역에 대기업이 모체가 돼 탄생한 병원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우리 병원 입지가 좁아지는 위기를 맞았지만, 센터 중심의 진료와 고객이 만족하는 최상의 진료 시스템을 제공하는 병원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성장을 위한 돌파구를 찾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우석 진료부원장 : 지훈상 의료원장님께서 국내 최초로 응급진료센터를 개설한 이래 척추센터, 노인병센터, 호흡기센터, 유방암센터, 종합건강진단센터, 주산기센터 등 센터 중심의 진료시스템이 체계를 갖추게 됐습니다. 이처럼 영동세브란스병원은 개원 초기부터 많은 도전을 해왔고 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원장님 말씀처럼 개원 당시부터 젊은 의사들이 서로 소통하고 긴밀하게 협력하는 가운데 현안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해왔고, 그 모습을 후배들이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지금의 강남세브란스병원을 발전시켜온 조직문화로 자리 잡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훈상 전 연세의료원장 : 제가 병원장으로 근무할 때부터 지금까지 병원 공간은 그대로입니다. 강남 지역에는 병원을 확장할 수 있는 땅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강남세브란스병원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늘 우리 후배들이 고맙고 대견한 마음입니다.

PART 2.

세브란스 의학의 성공적 확장

2009년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이름을 바꾼 것을 계기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두 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지훈상 전 연세의료원장 : 이제는 병원에도 고객만족이라는 개념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이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초창기만 해도 환자들에게 그다지 존재감이 없던 병원이 신뢰받는 병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은 성장 잠재력 강화를 위한 교육·연구 기능을 바탕으로 고객을 위한 진료의 차별화와 전문화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나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의 홍보매체는 환자와 보호자들입니다. 그분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고품질의 의료서비스를 개발해야겠다는 정신으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해온 것들이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우석 진료부원장 : 우리 병원이 강남 지역을 대표하는 의료기관으로 성장하는 동안 다른 대형 병원들도 엄청난 성장을 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도 사실이고요. 개원 초기에 많은 분의 노력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고, 2009년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름 하나 바뀐다고 큰 변화가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이를 기점으로 많은 성장을 거두면서 우리 병원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명품 병원 강남세브란스 시대의 초석을 다진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새롭게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대학병원으로서 국내 의료기술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지훈상 전 연세의료원장 : 강남세브란스병원은 개원 당시 의료환경이 열악한 상황이었지만, 뭔가 해보자는 구성원들의 열정은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의지가 강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응급의료센터를 개설하고 로봇수술기의 전 단계인 음성로봇수술기를 도입할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열린 병원이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우석 진료부원장 : 외부에서 훌륭한 분들을 영입하고, 병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선순환이 이어지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는 글로벌 병원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우수한 실력을 갖춘 교수님이 많습니다. 많은 업적을 쌓은 분들이시지만 지금도 늦은 시간까지 수술하시고, 바쁜 스케줄에도 신환을 정성껏 진료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훌륭하신 분들이 병원을 이끌어주시는 가운데 교직원들의 헌신과 노력, 무엇보다 초창기부터 이어온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PART 3.

앞으로의 강남세브란스병원을 그리다

새병원 건립은 강남세브란스병원의 또 다른 방향으로의 도약입니다. 앞으로의 진료 방향성과 완공까지 이루어야 할 목표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우석 진료부원장 : 새병원 건립은 진료의 단절 없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10년에 걸쳐 단계별로 진행될 계획입니다. 요즘 모든 병원의 화두는 스마트병원이며 그 핵심은 결국 사람입니다. 따라서 환자경험, 안전에 있어서 수준이 향상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의료를 담당하는 분들의 업무 체계를 더욱 자동화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새병원 건립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서비스를 건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하드웨어가 좋아도 결국은 거기서 움직이는 사람을 위한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더욱 발전하고 혁신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료원장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우리 병원은 과거 40년 동안 제한된 공간에서 효율을 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해왔지만 이제는 한계에 부딪치는 시기가 됐습니다. 개원 초기부터 이어져오고 있는 우리 병원만의 도전정신을 잘 이끌어내 새로 짓는 건물에 채워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는 10년이 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오늘 대담은 개원 초기 병원의 기틀을 다진 주역과 새병원 건립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는 주역이 만난 자리였습니다. 강남세브란스 개원 40주년을 맞아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지훈상 전 연세의료원장 : 쉽지 않은 환경에서 우리 후학들이 너무나 열심히 잘해주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The First, The Best' 세브란스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는 기회여서 반갑기도 했습니다. 질적·양적으로 팽창하고 모든 것이 급변하는 시대에 살면서 여러 가지 변수가 생겨나겠지만, 우리 기관의 큰 우산 역할을 하는 연세의료원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잊지 말고 지켜주시기를 당부합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전문화·세분화가 가능하려면 우선 조직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하 동료 및 타부서 직원간의 원활한 소통능력이 필수적입니다. 모든 가치는 건강한 인간관계에서 생겨납니다. 이를 맺는 능력은 내가 먼저 베풀고 상대방의 장점, 강점을 보는 혜안에서 비롯됩니다. 글로벌 의료기관으로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풍부한 임상경험을 바탕으로 진료의 질을 높이고,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IT, ICT, AI, 가상현실, 챗GPT 등에 부응하는 자기계발역량과 능력을 키워 지속성장을 위한 부단한 노력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우석 진료부원장 : 의료원장님 말씀을 듣고 '강남세브란스'라는 이름이 주는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세브란스병원의 캐치프레이즈 'THE FIRST, THE BEST'는 의료원장님이 재임기간에 만드신 것으로 아는데, 여기에는 지난 40년간 이어온 강남세브란스병원의 역사와 전통, 도전정신이 함축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정신을 새병원에 잘 담아 우리 후배들에게 이어질 수 있도록 잘 준비하고 계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