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차관으로 제안한
병원 건립

강남세브란스병원이 개원 40주년을 맞았다. 의과대학에 최초의 분원으로 개원한 강남세브란스병원이 만들어진 과정은 어땠을까? 예방의학 수련을 마친 후 개원 과정에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았다.

 유승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유승흠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 건강보험의 탄생과 발전에 기여하고 병원 경영의 선진화를 학문적으로 뒷받침한 학자. 연세대보건대학원장,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원장, (재)한국의학원 이사장, 대한예방의학회 이사장, 학교법인 유한학원 이사장, 필란트로피 소사이어티 초대 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을 받았으며, 현재 의료 소외계층에 의료비, 약제비를 모금·지원하는 한국의료지원재단 이사장으로서 활발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파독 간호사의 일자리로 병원 건립 제안

김효규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이 1975년 8월, 남대문 부근 도큐호텔에서 경제기획원 남덕우 장관과 자리를 같이했다. 정부의 다른 부는 Ministry라고 하였는데, 경제기획원은 EPB(Economical Planning Board)라고 하였다. 1962년부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했는데, 제4차 5개년 계획에서는 경제개발을 경제사회발전으로 명칭을 바꿨다. 한국개발원(KDI)에도 보건부서를 두었다. 1977년에 국민소득 1,000달러를 목표로 하였고, 1월에 의료보호, 7월에 당연적용 의료보험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장관과 만나 아무 부담 없이 건강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었다. 1만 명이 넘는 간호사가 1960년대에 독일에 파견되어 근무하고 있는데, 이들이 귀국하게 되면 취업할 곳이 마땅하지 않을터이니 한국 정부에서 대책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독일 정부의 요청이 있었다고 했다. 이에 김효규 의료원장은 재정 지원이 가능하다면 병원을 건립해 파독 간호사들을 취업시키면 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 있게 답변하였다.

경제기획원은 이런 의견을 독일 정부에 알렸다. 이에 독일 정부는 타당성조사를 실시할 팀을 파견하였다. 그런데 당시에 우리민소득이 200달러 수준이었으므로 독일 조사팀은 별로 탐탁하지 않다는 견해를 가지고 돌아갔다. 정부는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1969년 제3한강교(한남대교)를 개통했다. 한강 남쪽에 공장지대인 영등포가 있었을 뿐이고, 그 외에는 논밭이었기에 정부는 서울의 강남 지역 개발을 강조하였다. 의료원장은 이를 염두에 두고 건설부, 주택공사 등과 접촉하였다.

독일 정부는 병원 1개를 건립하는 데 재정차관을 지원하는 것은 별문제도 없고 어렵지 않으므로 우리 정부의 제안에 긍정적이었다. 의료원장은 필자에게 병원 건립 제안서를 작성하라고 하였다. 강남 지역에 500병상 규모의 병원을 건립하고 뇌, 심장, 어린이를 위한 센터를 염두에 두도록 하였다. 경제기획원은 독일 정부 재정차관으로 병원을 건립하도록 독일재건은행(KFW)과 협의하였고, 국회 경제과학심의위원회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립대학교에서 독일 재정차관으로 병원 건립을 제안한 것이므로 문교부(현 교육부) 소관이었다. 그러나 병원을 건립하려면 보건사회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필자는 이를 감안해 보건사회부와 접촉할 것을 의료원장에게 조언하였다. 그런데 의료원장은 문교부 소관인데, 굳이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참조하도록 할 필요성이 있느냐고 외면하였다.

영동병원 프로젝트 내용을 담은 책자

유승흠 교수 군 복무 당시 사진(윗줄 우측에서 다섯 번째)

1972년 병원 부지 항공사진

의료원장의 긴급 전화

김효규 의료원장이 공군본부 의무기획담당관으로 근무하는 필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차를 보낼 테니 급히 학교에 오라고 해 점심시간에 의료원장을 만났다. 보건사회부 장경식 의정국장이 의료원장에게 전화해 장관의 의중을 밝히면서 의료원장에게 양해를 구했다고 말하였다.

필자는 대방동에서 퇴근버스를 타고 광화문 앞 정부종합청사에 있는 보건사회부에 갔다. 전공의(조교)일 때 보건사회부/WHO 종합보건개발사업에 상대역(카운터파트)으로 일하면서 보건사회부 의정국 직원들과 친하게 지낸 바 있었다. 강원식 과장은 필자가 묻기도 전에 장관이 버럭 화를 낸 상황을 자세히 알려주면서 정부는 병원 건립에 긍정적일 터이므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신현확 장관이 보건사회부 장관을 역임한 최재유 박사(연세의대 1929년 졸업)에게는 꼼짝을 못 하는 관계임을 귀띔해주었다. 부지런히 학교로 가서 의료원장에게 설명해드렸다.

난관에 부딪힌 병원 건립 신청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독일 정부 재정차관으로 병원을 건립하려고 보건사회부에 제안서를 제출했다. 의정국 장경식 국장이 신현확 보건사회부 장관에게 결재를 받으려 하자 무슨 서류인지를 물었다.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서명한 제안서라고 답변하자 장관은 버럭 화를 내면서 서류를 집어던졌다. 사립대학교에서 어떻게 정부 재정차관을 하며, 무의촌이 허다하고, 산업병원이 부족한 현실인데, 왜 서울에 병원을 건립하려 하느냐고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하였다.

연세대학교에서 600만 달러 독일 정부 재정차관으로 문교부에 병원 건립을 제안하였는데, 규모가 작으므로 보건사회부장관은 구체적으로 내용을 파악하지 않고 서명을 한 것이기에 불쾌하였고 화가 난 것이었다. 정부 재정차관이므로 목적이 같으면 연세대학교가 아닌 다른 기관에 주어도 관계없으므로, 연세대학교에 준다는 보장이 없다고 한마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