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과 박형준 교수
희귀난치성 질환에
희망을 불어넣는 의사
고칠 수 있는 병도 환자와 가족에게는 고통과 시련이다. 하물며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진단받은 환자와 가족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신경계 희귀난치성 질환의 근본적인 치료제 개발과 관리 방법을 찾고 싶다는 신경과 박형준 교수를 만났다.
글 편집실 / 사진 송인호
신경계 질환 중에서도 말초신경질환, 근육질환, 신경근육이음부질환, 척수병, 근위축측삭경화증(루게릭병), 다발성경화증 및 시신경척수염을 포함하는 다양한 질환의 진단 및 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박형준 교수. 박 교수는 이 중에서도 대표적인 희귀난치성 질환인 유전성 신경근육질환에 많은 관심을 두고 진료와 연구를 하고 있다.
“학생 때 임상 실습을 하면서 들었던 선배님의 말씀이 신경과를 선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경과에서 진단을 위해서는 마치 탐정처럼 환자의 사소한 이야기와 호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다른 어떤 과보다도 진단을 위해 혈액검사, 영상검사, 근전도검사 같은 다양한 검사를 하지만 가장 중요한 도구는 신경학적 진찰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망치’라고 했습니다.”
박형준 교수는 신경과를 전공으로 택하고 18년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이것이 신경과의 특징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신경과의 다양한 영역 중에서도 특히 신경근육질환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러한 신경과적 특징이 가장 두드러진 영역이기 때문이다.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의 발전
“신경근육질환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면서 2011년 전임의 과정 때 읽었던 논문 구절이 현실이 됐습니다. ‘우리는 대표적인 난치성질환인 유전성 근육병을 단순히 진단하는 과정을 넘어서 병리기전을 기반으로 치료제를 만드는 시기에 살고 있다’라는 문장이에요.”
유전대사질환인 폼페병은 인간 GAA 효소를 보충해주는 치료가 국내에서 2012년부터 시작됐고, 듀센근디스트로피 질환도 치료약제가 미국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아 치료제로 사용 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전성 신경근육질환에서 다양한 기전을 기반으로 한 유전자치료제, 줄기세포치료제, 분자치료제들이 전임상시험 또는 임상시험 중에 있다. 현재는 유전성 신경근육질환이 대표적인 희귀난치성 질환이지만, 새로운 치료제가 개발돼 증상 개선이 가능해진다면 통제 가능한 질환영역으로 편입될 것이다.
유전성
근육질환의 메카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유전성 신경근육질환 영역에서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관이다.
근육생검에서 얻은 근육조직을 특수염색 방법인 면역조직화학염색으로 추가 진단을 하고,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 기반의 유전자 검사로 유전학적 진단도 병행해 진단의 정확도를 높이고 있다. 치료에서도 폼페병과 척수근육위축증 환자에게 마이오자임과 스핀라자를 적용해 완치율을 높이며 신규 치료제의 임상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박형준 교수는 이 밖에도 염증성 근육병의 생체지표가 되는 항체 연구를 통해 정확하게 진단하고 이 환자들의 임상 양상과 근육생검 소견, 영상 소견을 정리해 보고하기도 했다. 이처럼 박형준 교수의 궁극적인 목표는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근본적인 치료제 또는 관리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임상적으로는 희귀난치성 질환 환자들을 진단하며 치료법을 찾고 세포와 쥐 모델을 통해서 새로운 치료 후보물질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대장항문외과 박은정 교수
하이펙 시술로
대장암 4기의 빛이 되다
통상 대장암 4기에 복막 전이 상황이라면 수술도 진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수술 후 항암치료로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됐다. 대장항문외과 박은정 교수는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하이펙 치료의 선두주자다.
글 편집실 / 사진 송인호
세브란스 정신으로
진행해온 하이펙
흔히 항암치료라고 하면 정맥주사로 맞는 치료를 떠올리지만, 복막 내로 전이된 경우에는 주사 항암제가 침투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럴 경우 항암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복강 내에 직접 항암제를 투여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게 바로 하이펙(HIPEC, Hyperthermic intraperotneal chemotheraphy, 복강내 온열항암화학요법)이다. 고온에서는 항암제의 침투력이 더 좋고 암세포를 제거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수술로 암세포를 제거한 후 42~43℃의 고온 상태에서 항암제를 복강 내에 넣어 복막에 직접 약물이 흡수되게 한다. 항암 효과는 높이고 재발 위험은 낮추는 방식이다.
복막전이 치료에 사용되고 있는 하이펙 치료는 박은정 교수가 전임의를 하던 시기에 국내 신의료기술로 승인을 받았다. 이를 세브란스병원에서 대장암 분야 적극 치료에 활용하여 박 교수는 하이펙 초창기부터 시술에 참여해 발전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봐왔다. 수술 과정도 힘들어 체력적으로도 고되지만 환자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세브란스 정신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하이펙이 2014년에 신의료기술로 인정받고, 세브란스에서 가장 먼저 도입했습니다. 다른 기관에서 10~20케이스 정도 진행할 때 저희는 매년 100케이스 가까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브란스가 국내 하이펙 분야를 책임지는 기반이 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이펙은 대장암뿐만 아니라 충수돌기가 점액을 생성하다 점액이 과증식되어 터지면 배 안에서 점액이 자라는 ‘복막가성점액종’에도 활용된다. 이 질환의 경우 하이펙 치료가 도입되기 전에는 수술로 점액을 제거했지만 재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이펙 치료를 적용한 후에는 재발 없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게 됐다.
힘들지만
외과만의 매력이 있어
박은정 교수는 몇 년 전부터 하이펙 치료에 사용하는 항암제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복강 내에 투여하는 항암제를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투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서 연구가 시작됐다.
“화장품도 얼굴에 바르는 것, 손에 바르는 것이 다 다르잖아요. 주사로 투여할 때와 하이펙 치료를 할 때 같은 항암제를 사용하는 것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복강 내 직접 투여에 적합하도록 제형을 바꾸는 등 계속해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외과는 업무량과 수술이 많아 힘든 전공으로 꼽힌다. 하이펙 치료의 경우 수술 시간이 기본 12시간이 넘어 고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박은정 교수는 그게 외과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수술적으로 굉장히 치료가 잘돼서 환자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그래서 밤을 새서 수술을 해도 결과가 좋아 환자가 회복하고, 식사도 잘하고, 퇴원하여 또 외래로 오시면 뿌듯해요. 제가 최선을 다하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전공자로서 누리는 굉장한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들을 위해 계속해서 연구와 수술을 이어나갈 예정이라는 박은정 교수.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말기 암 환자들이 수술 후 더 오랜 기간 생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그의 바람과 목표가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신경외과 유지환 교수
뇌전이암의 원인을
연구하다
최근 암 환자들의 생존 기간이 길어지면서 뇌전이암이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지만, 암이 어떻게 뇌로 전이되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신경외과 유지환 교수는 뇌전이암의 기전을 밝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글 편집실 / 사진 송인호
다양한 수술법이
가능한 신경외과
뇌전이암은 다른 부위의 암이 뇌로 전이된 경우를 말한다. 안타깝게도 암세포가 어떻게 뇌에 침입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폐암·유방암·피부암이 원발암인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가 학생 때만 해도 뇌전이암으로 진단받으면 기대여명이 보통 반년에서 1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전자 검사가 일반화되고 표적치료 신약들이 많이 개발돼 뇌전이암으로 진단받아도 항암치료 후에 1년 이상 생존하는 경우도 늘었습니다. 신경외과에서도 이런 흐름에 발맞춰 더 적극적으로 치료에 개입하고요. 특히 환자가 젊거나 치료 경과가 좋다면 더 좋은 예후를 기대할 수 있어 수술과 방사선치료, 항암치료를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는 두개골 바닥 부분으로 수술하는 ‘두개저접근법’의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이에 더해 내시경 수술 기법을 도입해 전통적인 방식과 최신 기술을 어우르는 치료가 가능해졌다. 내시경 수술은 장비의 발전으로 더 작은 절개로 많은 부분을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눈을 통해 뇌 안의 종양을 치료하는 안와경유접근법(Transorbital approach)나 코를 통해서 수술하는 비내접근법(endonasal approach) 등이 일반화되었다. 또 개두술 분야에서도 수술 중 환자의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각성 수술을 진행한다. 까다로운 수술이지만 각성 수술을 위한 마취를 진행하는 마취과, 근전도를 감시하는 재활의학과, 수술 중 뇌전증을 감시하는 신경과 등 다양한 과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수술을 하려면 많은 과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수술 후에도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위해 종양내과, 방사선종양학과 등 여러 과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습니다.”
밝혀지지 않은
뇌전이암 기전
해명이 목표
유지환 교수는 신경외과에서도 뇌종양 수술과 치료를 주로 담당하고 있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고 응급 상황인 경우가 많아 의사의 역할이 특히나 중요한데, 이러한 점이 부담이 아닌 매력으로 다가와 신경외과를 선택했다고 한다. 환자들이 호전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힘든 수련 과정도 잘 마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 유 교수는 뇌전이암에 관심을 갖고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뇌전이암 진단 후 기대 여명이 길지 않기에 그동안 소극적으로 치료해왔던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치료를 시행하는 추세다.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뇌전이암의 기전을 밝히는 것이 유지환 교수의 목표다.
“뇌의 신경조직은 혈액뇌장벽(Blood-brain barrier)으로 철저히 분리되어 보호받고 있습니다. 매우 촘촘해서 세포가 들락날락하기 어려운데요, 이를 뚫고 어떻게 암이 뇌로 전이되는지 그 기전을 밝혀내고 이를 억제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수술 후 회복하는 환자를 보고, 주도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때 성취감을 느낀다는 유지환 교수. 뇌전이암의 기전을 밝히고 싶다는 그의 목표이자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