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관외과 노성훈 교수

위암수술의 최고봉에게도
아직 오르고 싶은 산이 있다

국가암통계에 따르면 1기 위암은 생존율이 95%를 넘지만, 원격 전이가 있는 4기 환자는 생존율이 15%에 불과하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다른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위암 환자에 맞는 최적의 치료법을 찾아 적극적인 치료를 제공한다. 최근 만 96세 위암 환자의 잔위암 제거 수술에 성공함으로써 말기 위암 환자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한 노성훈 교수를 만났다.

글 편집실 / 사진 송인호

국내 최고령 잔위암 환자의 고난도 수술에 성공하셨습니다. 먼저, 잔위암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잔위암은 부분 위 절제술을 받은 환자의 남아있던 위에서 발생하는 암으로, 약 2~6%의 환자에서 발생합니다. 이번 96세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2004년 위암으로 위 60%를 잘라내는 복강경 위아전절제술을 받으셨습니다. 이후 완치판정을 받고 지내다 최근 빈혈 증상, 식후 복부 불편감, 위·식도 역류 증상을 호소하여 위내시경 및 조직검사를 통해 6cm 정도의 큰 종양이 동반된 잔위암을 진단받았습니다. 위 절제술로 남은 위와 소장을 연결하는데 담즙과 췌장액이 위와 소장을 연결한 부위로 역류하여 위 세포를 지속적으로 자극하면 잔위암 발생률이 높아집니다.

잔위암 수술은 기존에 수술했던 부위를 또 다시 수술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롭습니다. 이 환자는 과거에 수차례의 복부 수술을 받은 병력이 있기 때문에 복강내장기들이 심하게 유착돼 있어 고난도 술기가 필요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3시간여 만에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고,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였습니다.

고령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수술이어서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환자는 과거 위암수술 외에도 다양한 질환치료 경력이 있었고 심한 복부비만이 동반된 고위험군 환자라서 수술에 대한 부담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고령층 대상 수술이기에 과거에는 적극적인 수술치료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고령화시대로 접어들면서 노인인구가 늘어나고,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가 커지면서 수술을 희망하는 환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환자의 경우, 수술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뒷받침됐고 본인의 수술에 대한 의지가 컸으며, 가족들의 지지 덕에 순조로이 수술이 결정된 것 같습니다. 과거와 달리 ‘하루를 살더라도 고통없이 편하게 지내고 싶으니 수술을 해달라’는 쪽으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어 사회도 거기에 발맞춰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근래 우리 병원에서 진행하는 위암 수술이 연간 450건인데 그중 70세 이상 고령 환자 비율이 20%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고령 환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될 것이므로 환자의 나이가 수술적 치료를 제한하는 요인이 되지 않도록 고령 환자와 보호자들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고, 의료진들은 수술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령 환자들도 충분히 여생을 건강하고 아프지 않게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료진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시행한 위암 수술 건수가 1만 건이 넘습니다. 위암 분야에 특화된 진료를 선보이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1987년 제가 전임 강사에 임용될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한 암은 위암이었습니다. 위암 조기진단 시스템이 부족한 시절이라 90%의 환자가 진행성 암으로 진단되었습니다. 또한 열명 중 한명은 개복을 하더라도 암의 진행 상태가 심하여, 손을 쓸 수 없었기에 위암 환자들의 생존기간이 짧았고, 삶의 질도 좋지 못했어요. 어려운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의사가 되기 위해 외과를 선택했는데 위암으로 고생만 하다 돌아가시는 분들이 너무 많은 상황이 안타까워 위장관외과를 전공했고, 지금까지 단 한순간도 그 선택을 후회 해 본 적이 없습니다.

35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위암 환자를 수술하고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다. 과거와 비교해 볼 때 수술 술기도 발전하고 우수한 항암제들도 개발됐지만, 진행성 위암 환자가 완치되기에는 아직까지도 한계가 있어요. 그런 환자들에게 더욱더 도움이 되고,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는 것이 제가 꼭 이루고 싶은 꿈이자 목표입니다.

특히, 4기 위암 판정 환자를 위한 전환 수술(항암제를 이용하여 암 세포 크기나 범위를 줄인 뒤 수술하는 것) 시스템 구축과 효율적인 운영에 노력하여 세계 어느 병원보다 전환 수술을 많이 시행하고 많은 환자분들이 치료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35년간 위암수술을 집도하면서 시대 흐름에 따른 의료 환경의 변화를 몸소 체감하셨을 것 같습니다.

외과의사 활동 초창기에는 새로운 수술법에 대한 표준화가 큰 이슈였습니다. 1980년대에는 위암 수술을 할 때 조직을 자르기 위해 가위나 칼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인체의 모든 부위에는 미세한 모세혈관이 분포되어 있어 칼이 닿으면 어디든 피가 나게 되는데, 수술 시 출혈이 되면 수술 시야가 피로 물들어 수술 진행이 힘들어지고, 출혈이 되는 혈관들을 찾아 실로 일일이 꿰메야 하기 때문에 수술 시간이 길어지고 수혈이 필요하기도 했지요. 그 당시 신경외과나 정형외과에서 출혈 부위를 전기소작기로 지혈하는 것에 착안하여 수술 시야를 깨끗하게 유지하며 수술하기 위해 위암 수술에 이를 적용하였습니다.

1989년 제가 위암 수술에 전기소작기를 최초로 사용하게 된 이후 출혈 없는 수술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또한 상부 위암 치료를 위해 위 전절제술을 할 때 비장으로 가는 혈관 주변의 림프절 제거를 위해 비장을 함께 절제하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수술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1997년 비장을 보존하면서 비장 동맥 주위의 림프절을 제거하는 수술방법을 최초로 제시하였고,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었던 이 수술법은 현재 국내뿐 아니라 세계 표준수술법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또한, 수술 전후 환자들이 느끼는 고통과 불편함을 줄이고 회복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콧줄(비위관)과 심지(배액관)을 넣지 않는 방법을 제안하고 임상 현장에 적용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산부인과에서 시행하던 무통분만을 위해 사용하던 무통 마취 방식을 위암 수술 환자에게 사용하여 환자의 통증을 경감시켜 수술 다음날부터 걷는 운동이 가능하도록 하여 장 운동 회복을 촉진하였습니다. 통상적으로 25cm의 피부 절개를 통해 수술하던 것을 15cm 미만으로 줄임으로써 절개부 염증, 탈장, 수술 후 장유착 등의 합병증을 감소시키고 미용 효과까지 고려하는 수술을 시행했습니다.

새로운 수술법과 시술의 치료효과를 국제학회에 발표하고 중국, 러시아, 인도, 우크라이나등에서 15차례에 걸쳐 수술 시연을 하였습니다. 위암 선진국이라고 일컬었던 일본을 비롯해 500명이 넘는 외국의사들이 세브란스병원에서 연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힘들고 어려운 점도 많았지만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