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의료,
의료의 미래를 바꾸다

정밀의료는 유전자, 환경, 생활습관 등 개인차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환자를 분류하고 각각의 특성에 맞게 예방법과 치료법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정밀의료를 미래전략분야로 전망하고 임상 유전체학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고, 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의료기술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정밀의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연세의료원에서도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맞춰 암과 희귀질환에 대해 유전체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밀의료센터를 개소했다.

글 편집실 / 사진 송인호

PART 1.

정밀의료란 무엇인가?

전 세계적으로 정밀의료에 관심이 높고, 이와 관련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내 의료계의 상황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연세의료원 하님정밀의료센터 최재영 센터장 : 정밀의료는 암과 희귀질환이라는 두 가지 영역에서 적용되고 있습니다. 암 병리 위주였으나 점차 영역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암 진단은 이미 임상에 가까워졌고, 희귀질환은 그간 학문적인 관점에서 다뤄왔지만 최근 환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정밀의료와 관련해서 볼 때 환자들에게 적용되는 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후발 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암을 치료하는 카티(CAR-T)치료제 중에는 FDA 허가를 받은 것이 많은 데 비해 우리나라는 이제 막 임상을 진행하는 상황이고, 희귀질환과 관련해서는 아직 전임상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축적해온 데이터는 질적·양적 모두 세계적인 수준인 만큼 허들만 넘으면 임상개발에서도 우리가 선도할 시기가 올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정밀의료센터 정준 센터장 : 지금까지의 암치료는 표준 치료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유전자분석을 훨씬 쉽게 할 수 있게 되면서 정밀의료를 암 치료에 적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같은 암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증상이 다르기 때문에 치료도 달라야 한다는 것이 정밀의료, 즉 precision medicine의 기본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전체분석을 통해 알게 됐고, 거기에 맞게 치료할 수 있는 기술들이 개발됐기 때문에 기존의 표준 치료보다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예상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입니다. 임상에서 치료제로 개발된 것도 소수에 불과해 일반화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일반화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가능성을 두고 많은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정밀의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최재영 센터장 : 정밀의료라는 개념이 처음 나온 것은 휴먼게놈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통해 유전체 염기 서열을 해독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하지만 유전체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데 드는 비용이 수십 조 원에 달할 정도로 엄청나다보니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차세대염기서열분석(NGS) 장비가 나오면서 임상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불과 10년이 채 걸리지 않은 시간에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정준 센터장 : 최재영 센터장님이 언급하신 대로 휴먼게놈프로젝트가 2000년대 초반에 완성됐는데 당시 이를 분석하기 위해 5개 큰 기관에서 각자 유전자를 나눠 맡으면서 10년 이상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걸렸던 것이 NGS가 나오면서 며칠 만에 가능하게 된 거죠. 비용도 처음에는 한 사람의 유전체를 검사하는 데 몇억 원 이상이 들었는데 지금은 장비가 개발돼 50만 원 수준으로 확 떨어지면서 현실성이 생기다 보니 정밀의료 연구에 가속도가 붙게 되었습니다.

PART 2.

현실 속으로 다가온 정밀의료

연세의료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도 각각 정밀의료센터를 개소했습니다. 각 기관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재영 센터장 : 하님정밀의료센터는 발전하는 정밀의료기술이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전영한 회장님의 뜻에 따라 지난 2019년 문을 열었습니다. 1부 센터에서는 선천성 희귀질환을 진단하고 유전자치료제 임상 적용에 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2부 센터에서는 암, 그중에서도 희귀 암에 대한 정밀의료 데이터를 축적하고, 다학제 진료 및 빅데이터를 활용해 맞춤형 암 치료를 위한 기드온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암 중에서도 가장 치료가 어려워 병원에서 치료를 포기한 육종 환자들이 하님정밀의료센터를 많이 찾고 있습니다. 육종은 아직 치료 효과가 증명된 약은 없지만 외국에서 현재 임상실험을 통해 적극적으로 신약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찾아오셔서 임상실험 대상자로서 완치는 아니더라도 생존기간이 길어지는 등 도움을 받고 계십니다. 이런 중요한 과정을 결정할 때 한두 과의 판단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유전자분석 전문가를 비롯해 전 의료진이 모여 다학제 진료를 통해 적절한 임상치료제를 찾아드리고 있어서 우리 센터에 고마움을 전해오는 환자가 많습니다.

정준 센터장 : 강남세브란스병원은 2019년부터 정밀의료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 2020년에 정식으로 정밀의료센터를 개소했습니다. 우리 센터에서는 임상유전을 전문으로 하시는 교수님이 진료를 담당합니다. 유전 전문가로서 유전자분석을 통한 환자 진료와 현재 암은 없지만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보인자들에 대한 전문상담을 시행해 다른 병원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대동맥박리 질환에 특화돼 있어서 환자가 많은 편인데, 마르판증후군이라는 유전자질환으로 인한 대동맥박리를 발견하는 경우가 많아 여기에 대한 관리, 치료, 진단을 하는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신경섬유종증과 같은 희귀질환 클리닉에서 유전자검사를 통해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암 분야, 특히 유방암은 BRCA1/2와 같은 유전자들이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를 관리하는 BRCA 다학제 클리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정밀의료를 적용한 사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재영 센터장 : 국내에서 희귀질환 영역은 2년 전만 해도 정밀의료 개념으로 환자를 치료한 예가 거의 없었습니다. 최근 세브란스병원 안과 변석호 교수팀이 황반변성 환자 가운데 ‘RPE65 유전자 변이’로 시각 손실이 발생하는 유전성 망막질환에 유전자치료제를 투여한 것이 첫 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밖에도 최근 척추에 있는 운동신경세포가 유전적으로 망가지는 희귀질환에 대한 치료제를 공식 승인받아 환자에게 적용한 사례가 있습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는 이영옥 교수님이 희귀질환 환아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희귀질환 치료 대상이 되는지 알려면 유전자분석이 필수적이며, 이제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정밀의료가 의료 현장에서 적용되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정준 센터장 : 유방암 환자 5~10%는 가족력이 있으며 유전성 유방암의 대표적 유전자인 BRCA의 변이는 유방암 발병률을 60~85%까지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유방암 환자 가족들은 조기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유전자검사 비용 등 경제적인 부담이 크고, 유방암, 난소암을 동시에 진단받거나 40세 이전에 유방암이 발병하는 특수한 경우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검사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방암 가족력의 관리 중요성을 알리고 조기 발견 및 예방을 위해 한국유방건강재단에서는 ‘BRCA1/2 유전자검사’ 사업을 통해 검사비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이 사업에 3년째 협력병원으로 참여해 많은 분에게 검사를 하고 진단을 받아 조기에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PART 3.

정밀의료가 나아갈 길

정밀의료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반면 아직 임상에 접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고 내다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정밀의료,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최재영 센터장 : 희귀질환의 영역에서 정밀의료는 아주 빠른 속도로 많은 질환에 적용될 것이라 예상합니다. 이미 세계의 유수한 제약회사, 바이오벤처들이 다양한 기법으로 유전성질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서 FDA에서 허가받는 사례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향후 4, 5년만 지나도 이제 큰 병원에서 당연히 유전자검사를 하고, 가장 최신의 치료법을 찾는 일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기가 오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정밀의료가 의료 현장에 적용되려면 많은 연구와 임상 과정을 거쳐야 하고 무엇보다 정밀의료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난청 환자들을 주로 보는데 유전자검사를 하자고 하면 상당히 거부감을 가지는 분이 많아요. 당장 치료되는 것도 아닌데 왜 유전자검사를 하느냐고 생각하시는 거죠. 외국에서는 유전자검사가 내가 지금 당장 혜택을 못 보더라도 자녀들을 위해, 더 많은 사람을 위해 받아야 한다는 인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밀의료를 위한 데이터가 쌓이면서 이제 하나씩 해결되는 시기가 왔고, 정밀의료와 다소 떨어져 있는 의사들도 정밀의료가 연구용으로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 공감하고 계십니다. 정밀의료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훨씬 더 좋은 해결책이 빨리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준 센터장 : 암은 유전자적인 문제를 일으켜서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유전자 하나만 찾아서 치료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치료는 할 수 있지만 완치라고 할 수 없는 거죠. 아직은 암 발생을 막을 방법이 없고 그 분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어렵고 요원한 일인 만큼 암을 빨리 발견하고 빨리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의 특성이나 유전 정보, 가족력 등을 토대로 관리하고, 유전체분석을 통해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센터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본격적인 정밀의료 시대를 앞두고 두 기관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최재영 센터장 : 2019년을 기점으로 두 기관이 정밀의료센터 문을 열면서 활발한 움직임이 전개됐고, 이제는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정밀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데이터를 축적하는 것인 만큼 강남, 신촌, 용인, 앞으로 생길 송도까지 4개 병원이 유기적으로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가운데 하나의 컨트롤타워 아래 움직이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전국에서 독보적인 강점을 가진 의료기관으로 발돋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정준 센터장 : 최근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혁신적인 기술들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유전자분석을 통해 암이나 희귀질환의 정확한 진단과 개인 맞춤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조금씩 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서 치료받는 환자분들은 아직까지는 직접적인 혜택을 못 받는다고 생각해 유전자 검사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어서 데이터를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강남이나 신촌에서 많은 데이터를 모아 분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이를 통해 정밀의료, 맞춤치료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에 비해 환자에게 적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연세의료원과 강남세브란스병원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이해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