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몰두하게 만드는 것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터에서의 일상을 뒤로하고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나만의 비일상에 몰두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랜 시간 이어오며 취미를 넘어 타인에게 환호받는 활동을 하는 두 사람을 만나 나를 몰두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들어보았다.
글 편집실 / 사진 송인호
창작이 주는 즐거움
재활의학과 박진영 교수
근골격계질환과 신경계질환, 중환자재활 진료를 하는 재활의학과 박진영입니다. 바쁜 일상에서 틈틈이 음악활동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어느 순간부터 악보 보는 게 따분해서 제멋대로 치기 시작한 것이 작곡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초중고 시절에는 카세트테이프, 미니디스크, MP3플레이어에 작곡한 곡을 녹음해서 학교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감상평을 듣기도 했고, 대학 시절에는 음악 동아리 공연에서 작곡한 곡을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막상 가장 정신없이 바빴던 인턴·전공의 시절에 가장 많은 곡을 만들었어요. 이때 만든 100여 곡을 크리에이터 음원 사이트에 업로드했는데 꽤 좋은 반응을 얻어,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전문의가 된 후, 2014년에 피아노 연주곡 7곡으로 구성한 앨범 MUTUAL <Winter always comes after Autumn>을 발표했고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K-Indie Chart에 랭크되고 당시 빈지노, 자우림, 페퍼톤즈보다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도 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디지털 음원을 만든 지 25년 정도 됐네요.
아날로그와 디지털 신호를 다루는 작곡·편집 프로그램에 익숙해서인지 재활의학과에서 시행하는 전기진단학적 검사나 수술중신경계감시 장비들의 기본 세팅을 빠르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필터 세팅을 바꾸면 파형이 어떻게 변하는지 노이즈를 컨트롤하려면 어떤 상황을 살펴야 하는지, 음악 작업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스마트폰 앱이나 간편한 디지털 악기들로 작곡의 문턱이 많이 낮아졌어요. 새로운 취미를 찾는 분들께 한 번쯤 권하고 싶은 분야입니다.
작은 위안을 주는 풍선아트
신생아중환자실 정희정 간호사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간호 업무를 하는 정희정입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이 아기들이 있는 병동이다 보니 백일잔치나 행사가 있을 때 풍선으로 장식하기도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배우게 된 풍선아트를 간호사가 된 지금 요긴하게 활용할지 몰랐어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그림 그리기에 관심과 약간의 소질이 있어 초등학생 때부터 공예와 예술 동아리 활동을 했고, 이 취미는 대학생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내 손으로 만든 작품을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것이 좋았고, 받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은 저에게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기에 꾸준히 만들고 그리고 꾸미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얇고 긴 풍선에 바람을 넣고 이리저리 돌리고 묶어서 강아지, 꽃, 기린 등을 뚝딱 만들어내면 아이들과 같이 근무하는 선생님들도 환호성을 터트립니다. 병원 생활에 지친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물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죠.
풍선아트를 할 때는 생각을 비우고 집중할 수 있어 저에게는 쉼의 순간이기도 합니다. 잠시라도 딴생각을 하고 힘 조절을 제대로 못하면 풍선이 터져버리기 때문에 초집중하게 됩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작품을 만들고 나면 힐링되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코로나19 전에는 병동에서 작은 파티나 행사가 있을 때마다 풍선으로 장식하곤 했는데 지금은 이런 작은 즐거움조차 나눌 수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취미로 시작한 만들기가 저의 일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때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위안을 받는 분들을 보며 느끼는 보람이 저에게는 큰 위안입니다. 얼른 일상으로 돌아가 힘든 병원 생활에 지친 아기들과 보호자분들에게 작은 웃음을 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모두 모여 하하 호호 웃을 수 있는 날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