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이제 더는 소수가 겪는 특별한 질환이 아니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기분장애(F30~F39)’ 질환의 건강보험 진료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우울증과 조울증으로 대표되는 기분장애로 진료받은 인원이 100만 명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우울증 클리닉은 심리평가를 바탕으로 환자 맞춤형 치료를 진행해 우울증 환자의 회복을 돕고 있다.
글 편집실 / 사진 송인호
우울증 클리닉 석정호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우울증을 포함한 기분장애로 진료받은 인원이 2016년 77만 7,781명에서 2020년 101만 6,727명으로 5년 사이 약 30% 증가했다. 과거에는 우울증을 질병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인식이 달라졌다. 특히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와 우울감을 뜻하는 블루(blue)가 더해져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하면서 우울증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낮아진 것이 사실이다.
강남세브란스 우울증 클리닉은 지난 2010년 석정호 교수가 부임하며 문을 열었다. 치료가 어려운 난치성 우울증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면서 치료하기 위한 전문 클리닉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화된 뇌 기능 조절 프로그램으로
우울증 치료
우울증 클리닉에 처음 내원하면 심리평가를 진행한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있는지, 성인이라면 주변 사람과 애착 유형이 어떤지, 우울 정도와 자살 위험성을 평가하고 결과에 따라 맞춤형 치료를 진행한다. 트라우마 없이 최근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가벼운 우울증은 단기간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금방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심한 우울증의 경우 약물치료와 함께 심층 정신치료가 필요하다.
강남세브란스 우울증 클리닉은 2013년 영국 안나 프로이트 국립아동가족센터(Anna Freud National Centre for Children and Families)의 ‘마음 헤아리기 치료’를 국내 최초이자 유일하게 도입해 치료에 활용 중이다.
‘마음 헤아리기 치료’란 중증 우울증 환자와 경계성 인격장애 환자에게 특화된 정신치료 프로그램으로, 현재 이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임상적 근거를 창출하는 국책연구과제도 진행하고 있다.
뇌 기능 조절 프로그램도 특화 프로그램이다. 흔히 뇌의 왼쪽 전전두엽이 우울증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물치료와 상담을 통해 뇌 기능을 조절할 수 있지만, 뇌를 직접 자극하여 기능을 높이거나 억제하는 치료 방법도 사용된다. 과거에는 전기경련치료를 시행했는데 기억력 감퇴 같은 부작용이 있어 아주 심한 우울증이 아니면 시도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자기장 코일로 전자기장을 형성해 뇌 기능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10Hz 이상의 빈도로 빠르게 자극하면 뇌 기능이 향상되고 1Hz 이하의 낮은 빈도로 뇌를 자극하면 뇌 기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면서 억제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반복해서 자기장으로 뇌를 자극하는 치료법인 반복적 경두개 자기자극술도 식약처의 허가를 받고 시행하고 있다. 약물치료 반응이 충분하지 않은데 심리치료에 긴 시간을 쏟을 수 없는 사람에게 효과적인 방법이다. 한 달에 10~15일 정도 치료받아야 하지만, 하루에 5일 치 치료를 진행해 3일 만에 한 달 치 치료를 마칠 수 있는 가속형 경두개 자기자극술을 연구해 효과를 입증한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우울증 측정하는
객관적 검사 프로그램 도입
과거 정신건강의학과에 편견이 많았던 이유 중 하나는 약물치료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약물치료를 받다가 약에 중독된다는 오해로 우울증 약 복용을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예전에는 약물 부작용이 많았지만, 신약들은 부작용이 거의 없거나 약한 편이다. 이런 논란은 약물치료가 필요한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 근거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울증 클리닉에서 대부분의 진료는 혈액검사나 엑스레이(XRAY)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인터뷰나 상담 결과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진행된다. 하지만 강남세브란스 우울증 클리닉은 타액 속 스트레스 호르몬을 측정해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우울증을 판단한다. 기상 후와 취침 전 총 네 번의 타액을 채취해 코르티솔과 DHEA를 측정하는 호르몬 분석 방법을 정신건강검사평가 프로그램에 포함했다.
정신건강의학에서 우울증을 진단할 때 우울감의 정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우울감이 생활에 지장을 주는지 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불면, 식욕 부진, 감정 변화등의 증상이 2주 연속 계속되면 우울증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런 증상으로 인해 학생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직장인의 출근이 어려워지는 등 개인 역할에 기능 손상이 오는 것에도 중점을 둔다. ‘어느 정도 우울감을 느껴야 병원에 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 자택에서 진행할 수 있는 온라인 심리평가를 연구·개발 중이다. 또 타액 속 호르몬 분석, 심박변이도를 활용한 검사를 자택에서 할 수 있는 ‘재택정신건강평가서비스’도 교원창업기업인 (주)마인즈에이아이를 통해 서비스화할 예정이다. (주)마인즈에이아이와 강남세브란스 우울증 클리닉은 상호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여 우울증 환자들의 회복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매 순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터
강남세브란스 우울증 클리닉은 지난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를 확인한 초음파로 뇌를 자극해 우울증 치료를 돕는 방법의 식약처 허가 임상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 2013~2019년의 연구 결과를 정리한 논문을 근거로 ‘마음 헤아리기 치료’에 대한 임상연구를 국가 과제로 수행하고 있다.
모든 연구가 잘 마무리되어 더 많은 우울증 환자를 도울 수 있길 바란다는 강남세브란스 우울증 클리닉. 늘 환자만 생각하며 연구하는 이들의 매 순간이 정신건강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작지만 큰 걸음이 아닐까?
“편안한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우울증 클리닉을 만들겠습니다”
우울증 클리닉 석정호 교수(정신건강의학과)
우울증은 천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환자마다 각기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기에 환자 상태를 잘 파악하여 맞춤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강남세브란스 우울증 클리닉은 최고의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마음 헤아리기 치료’, 뇌 기능 조절 프로그램 등 특화 치료 방법과 약물치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또 정신치료 프로그램 강화를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생물학적 지표와 심리평가를 결합하여 정신건강을 평가하는 자가평가 프로그램을 연구·개발 중입니다. 고령자 정신건강 모니터링 서비스를 범부처 전 주기 의료기기 개발사업으로 지난해부터 시작하여 강남세브란스병원 주도하에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뇌 자극 프로그램 같은 신기술을 개발해 계속해서 정신치료 분야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연구하고 공부해 환자들을 도울 것입니다.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질병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시선이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병원 방문을 어려워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강남세브란스 우울증 클리닉을 찾는 분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치료를 받고, 우울증에 대한 편견과 오해에 빠지지 않게 도와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