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세브란스병원 박영민 교수팀이 진행한 연구과제가 ‘2020년도 제2차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에 최종 선정됐다. 이 사업은 한국 의료기기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차별화된 제품을 개발하는 범부처 R&D사업으로,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4개 부처가 합동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총 1조 2,000억 원 규모의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연구 프로젝트이다. 이번 사업의 총괄 연구책임자인 박영민 교수를 만나 연구과제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와 앞으로의 진행 방향을 들어보았다.
글 편집실 / 사진 백기광
이번에 선정된 연구과제가 ‘제4차 산업혁명 및 미래 의료 환경 선도’ 분야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주제에 관한 연구인지 궁금합니다.
최근 가수를 꿈꾸는 학생도 많고, 직업적으로 목소리를 사용하는 분이 크게 늘어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음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목소리를 많이 쓰다보면 성대폴립, 성대결절 등 목소리에 이상이 올 수 있는데 그중에는 빠른 시일 내에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처럼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면 빨리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대부분 성대 질환을 무심하게 넘기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개선책의 하나로 ‘음성 및 정신질환 예측, 진단, 관리를 위한 음성-언어-생체신호 통합 인공지능 의료기기’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음성이나 언어뿐만 아니라 전기성문저항, 혈류, 체온 등 생체신호에 대한 통합적인 AI 분석기술과 초소형 무선 다중생체센서기술을 활용해 웨어러블 스마트 의료기기를 개발하기 위한 산학병 융합 차세대 의료기술 개발 사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임재열·석정호 교수님,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이태윤·조정호 교수님, DGIST의 장경인 교수님, SK텔레콤 연구팀 등 많은 분이 원천기술개발에 힘써주시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과제는 제 전공이기도 한 이비인후과 부문에서 얻은 첫 성과인 만큼 개인적으로도 보람을 느끼며 무엇보다 함께 참여해주신 분들의 노력 덕분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연구개발사업에 선정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비대면 의료서비스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웨어러블 디바이스 개발에 대한 요구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연구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 의료기기는 환자가 굳이 의사 앞에 오지 않아도 음성 샘플을 채취해서 진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시대적인 상황과 더불어 기존 인공지능 관련 연구 혹은 제품들 중에서 음성질환에 관련된 부분이 미흡했기 때문에 우리 과제의 참신성이 돋보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는 이미 방대한 음성질환 환자들의 음성 샘플이 축적되어 있었기에 이번 과제를 추진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 10월, 사업에 선정된 이후 5개월이 지났습니다. 현재 진행 상황과 앞으로의 추진 방향이 궁금합니다.
음성질환 스마트 의료기기 연구과제는 총 5년에 걸쳐 이어질 계획입니다. 현재 1단계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음성질환 환자들의 음성 샘플을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하고 질환의 카테고리를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웨어러블 스마트 의료기기에 탑재돼 다중 생체신호를 측정할 수 있는 생체 센서기술은 현재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팀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2023년 2월까지 계속될 1단계 과정에서 시품을 어느 정도 완성할 예정이며, 2단계에서는 시제품 개발을 시작해 이를 바탕으로 기술을 축적하고 임상시험을 거쳐 결과물이 쌓이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승인을 요청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합니다. 의료기기가 상용화되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기간이 소요됩니다. 연구과제를 통해 원천기술이 개발되고, 시제품이 개발된다 하더라도 이후 시제품에 대한 안전성 평가, 임상연구 평가 등 거쳐야 하는 과정들이 복잡하고 까다로워 승인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 팀의 역할은 식약처의 승인을 얻는 단계까지이지만, 그 후로도 큰 차질 없이 잘 진행돼 많은 분에게 도움이 되는 스마트 의료기기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이번 연구과제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국책사업으로 선정된 만큼 기대도 클 것 같습니다.
우리 팀이 진행하고 있는 연구과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시공간 제약 없이 음성질환 및 정신질환을 예측, 진단, 관리하고 연속적 생체신호 모니터링을 통해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 다양한 임상 활용방안과 차별화된 사업화 전략을 통해 AI 헬스케어 산업 활성화와 환자 맞춤형 진료에 기여하길 바랍니다. 향후 음성질환·정신질환 환자들의 질환 발병을 예측하고 진단, 관리하는 데 우리가 개발한 의료기기가 사용될 것으로 여겨지며, 무엇보다 비대면 의료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기본적인 구성 요소로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단지 한 개의 의료기기 차원을 넘어서 미래 의료 환경 플랫폼의 일환으로 개발할 계획입니다.
국내 의료기기 산업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과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미래 의료 환경은 예측(predictive), 예방(prevention), 맞춤형(personalized)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중심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한 이유는 현재 기하급수적으로 쌓이고 있는 방대한 의료 데이터, 이를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 알고리즘 기술, 환자 유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스마트 의료기기가 이러한 의료 환경 변화에 적합한 원천기술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이번 연구과제가 전문 분야인 이비인후과 영역에서 거둔 성과인 만큼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비인후과 두경부 분과를 맡고 있으며 주 진료 분야는 음성질환, 두경부 종양, 암, 인후두 질환, 침샘 질환입니다.
이비인후과의 다양한 질환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비해 위상이 위축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번 연구가 이비인후과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어 난치성 음성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혁신적인 의료기기 개발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모든 환자가 질환에서 벗어나 본래의 맑고 고운 목소리로 말하고 노래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