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안전과 의료의 질을 향상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오늘날 병원에 주어진 사명이자 과제이기도 하다. 특히 최근 10년 ‘외과의사 절벽’이라는 말이 생길 만큼 외과의사 수가 감소하는 반면 수술 건수는 늘었고, 그만큼 수술 후 입원 중인 환자에 대한 전문적인 관리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떠오른 것이 외과 입원전담전문의제도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입원전담전문의로 근무하는 이주형, 노지현, 정진운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 편집실 / 사진 송인호
입원환자를 위한 안전하고 전문적인 의료서비스 제공
입원환자는 아침저녁 회진시간을 제외하면 의사 만나기가 힘들다. 대부분의 시간을 진료와 수술에 할애해야 하는 까닭에 상대적으로 입원환자를 볼 시간은 적을 수밖에 없다. ‘호스피탈리스트(Hospitalist)’로 불리는 입원전담전문의는 병동에 상주하며 교대로 24시간 환자를 돌보는 전문의를 말한다. 미국 등 의료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의료서비스로, 국내에서도 아직 초창기지만 강남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도입해 운영 중이다.
“외과는 수술 후 환자 관리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외과의사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입원환자의 안전문제가 대두되고, 여기에 전공의 80시간 근무상한제가 실시되면서 실제로 병동에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의사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새로운 포지션으로 입원전담전문의가 나오게 된 거죠.”
입원전담전문의 제도 도입으로 안정적인 환자 관리가 이루어지고, 환자 역시 의사와의 접근성이 향상되고 면담시간이 늘어나는 등 만족도가 높아졌다.
이주형 교수는 이 같은 장점이 외과에서 입원전담전문의를 도입하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입원전담전문의는 수술한 환자의 수술 전후 관리와 비수술적 치료를 하는 외과환자 관리 등을 총괄하는 의사라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수술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트레이닝을 받아 외과수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주치의 선생님과 상의하면서 안전하게 환자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어 병동에 계시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신뢰감을 드릴 수 있죠.”
수술 후 환자를 입원전담전문의가 관리하면 외과 의료진도 안정적인 환경에서 수술과 진료에 전념할 수 있다. 이처럼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제도이지만, 입원전담전문의에 대한 인식이 아직은 부족한 만큼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의료인으로서 보람을 느끼게 하는 제도
강남세브란스병원은 2018년 입원전담전문의 시범사업을 통해 내과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시작했고, 2020년 5월에 외과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 외과전문의 3명이 일반외과 소속으로 73병동 환자 30여명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은 입원전담전문의로서 보낸 지난 8개월 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고 입을 모은다.
“제가 외과를 선택한 이유가 외상환자라든지 중환자 곁에서 정성으로 치료하고 그 과정에서 보람을 찾는 모습이 멋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차가 올라가고 보니 현실적인 문제와 이상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노지현 교수는 그래도 젊은 의사로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서 입원전담전문의를 선택했고, 힘들 때도 있지만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더 많다고 말한다.
“직접 현장에 있어 보니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술 환자는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막연한 불안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의사가 자주 와서 설명해주고 언제든지 바로 달려올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점만으로도 안심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주형 교수는 의과대학에서 기본으로 배우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 라포가 중요하다’는 진리를 이곳에서 새삼 깨닫고 배운다며 웃는다. 환자들 가까이에 있으니 한 번 더 들여다볼 수 있고, 필요하면 여러 번에 걸쳐 설명하다보니 환자나 보호자가 안심하는 모습을 볼 때가 많다.
이제는 의료도 서비스 개념으로 이해되다 보니 환자가 기다리기 전에 의사가 먼저 찾아가는 것으로 바뀌어야 하고, 이를 충족해주는 것이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다. 장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외과 입원전담전문의가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터라, 현장에서 느끼는 애로사항 또한 분명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는 일이다.
“수술 환자들은 대부분 주치의가 변경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와 입원하는 동안 자신을 케어하는 의사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불안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병동에 상주하면서 환자를 케어하는 팀이고, 수술을 집도하신 교수님 팀과 함께 두 팀이 환자를 같이 돌보고 있다고 설명드립니다.”
정진운 교수는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를 잘 몰라서 생기는 일인 만큼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생각한다.
강남세브란스형 호스피탈리스트의 모델을 고민하다
외과 입원전담전문의가 현장에서 느끼는 또 다른 애로사항은 직접 수술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안타까움이다. 많은 환자가 초기에는 집도의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길 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더 자주 보게 되는 입원전담전문의를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간혹 집도의에 대한 의존이 높은 나머지, 수술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원전담전문의의 말을 못 미더워하는 환자들도 있어 안타까울 때도 있다. 하지만 힘든 상황을 견뎌낼 만큼 보람이 더 크고, 오늘날과 같은 의료 상황에서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강남세브란스병원 1세대 외과 입원전담전문의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입원전담전문의 제도가 아직은 시범사업이고 또 우리가 첫 도전인 만큼 앞으로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합니다. 힘들다고 느끼거나 아쉬운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처음 이 일을 선택하면서 가졌던 초심을 한 번 더 떠올려보려고 합니다.”
환자와 보호자들이 감사 인사를 전할 때, 덕분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퇴원한다는 말을 남길 때 이 일을 하는 보람을 느낀다는 세 사람은 이제 막 이륙에 성공한 만큼 한 단계 더 고도를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각오다.
“2020년이 우리가 한 팀으로서 첫 삽을 뜬 해였다면, 이제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서 궁극적으로 ‘강남세브란스형 호스피탈리스트의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가 해나가야 할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주고 제시할 수 있는 선배 역할을 잘해내고, 환자들에게 가까이 더 다가가는 신뢰받는 의사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