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는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곳으로 인식되어왔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만혼과 비혼이 확산되면서 산부인과는 여성의 건강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공간으로 재인식되고 있다. 최근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에도 난임과 가임력 보존 등을 상담하기 위해 내원하는 환자들이 늘어 이재훈 교수와 함께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글 편집실 / 사진 백기광
여성 질환, 이상이 감지되면
병원을 찾는 것이 예방의 지름길
통계청이 발표한 ‘2019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초혼 연령이 남자 33.4세, 여자 30.6세로 전년보다 0.2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초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난임으로 고민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여성의 가임력은 20대 중반이 가장 높고 35세 이후부터 급격히 저하된다.
결혼과 임신을 미룬 여성들에게는 걱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신의 난소 기능이 정상인지 미리 알아두려는 젊은 미혼 여성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런 경향이 산부인과의 새로운 트렌드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에는 무월경, 생리불순을 겪고 있는 청소년기 여학생들부터 가임력 보존을 원하는 젊은 여성, 난임과 폐경으로 고민하는 중장년 여성까지 10대부터 70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들이 내원한다.
“암환자의 경우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로 인해 가임력을 상실할 위험이 있으므로 이를 대비해 미리 자신의 난자를 얼려서 보존하는 난자동결보존법을 시행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환자들이 암이 아닌 양성 난소 종양 수술 전에도 난자 동결에 대해 문의할 정도로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난임에 대비해 젊을 때 자신의 난자를 얼려서 보존하려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가임력 보존에 대한 상담이 많아지는 추세다. 하지만 막상 진료를 해보면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잘 모르는 환자가 많다.
“40대 중반의 나이에도 당연히 임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습니다. 생리를 하고 있으니 임신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35세를 전후해 난자의 수가 줄고 질이 저하되기 시작하며, 임신하더라도 유산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 40대 여성 가운데 생리량이 평소보다 엄청나게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혈이 심해지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3, 4까지 떨어져서야 응급실을 찾는 환자를 한 달에 한두 명은 꼭 만나게 되는데, 이상이 느껴진다 싶으면 반드시 산부인과를 방문하셔야 합니다.”
여성들 가운데는 아직도 산부인과 진료를 꺼리는 사람들이 있다. 또 환자 개인의 주관적인 판단이 크게 작용하는 탓에 미루고 미루다 결국 응급실로 오는 경우가 많다. 여성 질환은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예방할 방법이 거의 없다. 따라서 자가진단은 금물. 생리통이 너무 심하거나 생리량이 너무 많으면 일단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호기심 어린 접근으로 시작한 연구
이재훈 교수는 지난 6월, ‘코로나19에 대한 성호르몬의 영향’이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보고해 관심을 모았다. 올 1월부터 4월까지 국내에서 코로나19 진단을 받은 성인 5,061명을 대상으로 성별에 따른 치료 결과의 차이를 분석했는데, 남녀 성호르몬은 코로나19 질병 경과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훈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초반, 중국에서는 여성에 비해 남성의 발병률이 높고 경과도 안 좋았기에 국내에서 성별에 따른 차이를 확인하고 싶었다면서, 국내에서는 코로나19로 진단된 환자의 남녀 비율은 남성 44%, 여성 56%로 여성이 더 많았고 사망률, 중환자 입실률 등에서도 성별 간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 호르몬이 없는 폐경 여성에서 여성 호르몬 보충에 따라 차이가 있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를 계속해나갈 생각이다.
“코로나19의 원인에 성호르몬이 작용한 것인지 X, Y 염색체 자체 때문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고 이에 관한 연구도 이루어진 적이 없었던 만큼 의미 있는 시도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평소 호기심 많은 성격이 지금의 연구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하는 이재훈 교수는 특히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내용이라서 더 재미가 있었다며 웃는다. 이 교수는 최근 미생물이 부인과 질환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들이 나오고 있어서 자궁내막증이 복강 내 미생물 때문에 생기는 것인지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장기적으로 감염과 관련된 부인과 질환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다.
“감염은 광범위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균성 감염이든 바이러스성 감염이든 이 균들의 대사가 자궁내막증과 같은 질환의 발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해보고 싶어요. 그렇게만 된다면 새로운 치료 약제를 사용할 수 있어서 의미가 크리라 생각합니다.”
최근 산부인과를 찾는 환자들 가운데 가장 많은 부인과 질환은 자궁내막증과 난임. 자궁내막증은 대개 호르몬 치료를 하게 되는데, 만약 세균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세균에 대한 항생제가 치료제로 쓰일 수 있는 만큼 상당히 의미 있는 연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질염은 흔한 부인과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는 이재훈 교수는 호기심 어린 접근으로 연구를 해나가는 것이 주니어 교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무감각해지지 말기
이재훈 교수는 우수한 교수들이 두루 포진해 있고 활발한 연구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의 강점으로 꼽는다.
무엇보다 표준 치료를 매뉴얼대로 준수하되 가장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함으로써 최적의 조건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변하는 표준 치료를 발 빠르게 도입해 적용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니어 교수와 선배 교수들의 유대 관계가 좋은 점도 장점 중 하나입니다. 의학은 귀납적인 학문이어서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해요. 선배 교수님들에게 자문할 때마다 흔쾌히 답을 주시고, 주니어 교수들의 생각에도 관심을 보여주시는 덕분에 빨리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주니어 교수는 투자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말하는 이재훈 교수는 병원 차원의 투자도 중요하지만 본인 스스로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10년 후를 내다보고 하루하루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급한 걸음이 아닌, 차근차근 단계를 잘 밟고 오르는 차분한 걸음을 내딛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다.
이재훈 교수는 산부인과에 오는 것을 꺼린 나머지 병을 키운 환자들을 대할 때가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빈혈이 심할 정도로 생리량이 많거나 3개월 이상 불규칙하면 호르몬 검사를 해볼 것을 권유하며 조기에 발견하면 시도 할 수 있는 치료가 많으니 제발 자기 몸이 보내는 신호에 무감각해지지 말라고 당부한다.
환자를 끌고 가는 의사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기다려주기도 하면서 완급 조절을 해나가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이재훈 교수는 미래 의학 발전을 위해 연구 분야에도 매진할 것이라는 각오를 피력했다. 지난번 연구에 이어 김용찬 교수와 함께 코로나19와 관련한 후속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니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