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속을 확대하고 투명화해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면 얻을 수 있는 정보량은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신경외과 박정윤 교수는 2015년부터 불투명한 유기물을 투명하게 만들고 확대해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글 편집실 / 사진 백기광
세포 투명화 이미징 기술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척추에 발생하는 모든 질환을 대상으로 최소 침습 척추수술, 즉 내시경을 이용하거나 최소한의 절개로 수술하고 있습니다. 세포 투명화 이미징 기술을 개발하게 된 계기는 척추 지도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전 세계 수많은 연구자가 뇌 지도를 만들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척추도 중추신경계의 한 분야이므로 뇌 지도 만드는 기술을 응용해 척추 지도를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싶어 미국 MIT로 연수를 가게 됐고, 그곳에서 조직을 투명하게 만드는 연구를 하게 됐습니다.
조직을 투명하게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현미경으로 조직을 관찰하려면 조직을 얇게 저며서 거울로 빛을 투과해야 하는데, 조직의 두께에 따라 빛의 투과도가 달라집니다. 역발상으로 조직을 투명하게 만들면 얇게 저미지 않아도 조직을 관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조직을 얇게 저미면 세포 단위의 연결구조를 보는 데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데 조직을 투명하게 만들어 자르지 않고 차곡차곡 깊이를 달리해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세포를 투명하게 만들고 4배 정도 확대해 고해상도로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올해 초 발표했습니다.
조직을 관찰할 때는 해당 조직에 형광단백질을 입힙니다. 그다음 조직을 투명하게 만들고 확대하려면 전처리 과정에서 90도 정도의 열을 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형광단백질이 없어집니다. 이번 연구에서는 열을 가하지 않고 이렇게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또 조직 전체에 형광물질을 입히고 사진 찍는 과정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단점이 있었는데 적은 시간과 비용으로 형광단백질에 손상을 가하지 않는 방법을 개발한 것입니다.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됐고요.
original brain
하이브리드 겔 후
하이브리드 겔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조직은 지질로 이루어진 세포막을 불투명하게 보이게 하는데, 제가 개발한 기술은 세포막에 있는 지질을 제거해서 투명하게 만드는 원리입니다. 세포막을 그대로 제거하면 조직이 무너지므로 전처리 과정에서 하이브리드 겔을 침투시켜 젤화한 다음, 세포막에 있는 지질을 제거하면 조직이 투명해지지만 위치나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는 원리입니다.
어떤 분야에 활용할 수 있나요?
뇌 지도를 만드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사람의 뇌를 구글맵처럼 세포 단위의 뇌 지도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990년 미국과 15개국이 함께 인간 유전체를 구성하는 염기서열을 모두 밝혀내고자 시작한 ‘휴먼 게놈프로젝트’는 뚜렷한 사용 목적은 없었지만 많은 양의 자본이 투입됐어요. 그런데 20여 년이 흐르고 나니 그때 투자한 연구비의 100배가 넘는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휴먼게놈프로젝트의 2차 프로젝트가 바로 뇌 지도이고 ‘누가 인간의 뇌 지도를 먼저 완성하느냐’가 차세대 바이오산업의 우선권을 결정할 것이라 예측합니다.
인간 뇌 지도가 완성되면 신경계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을 비롯해 척수 손상, 난치성 척수 질환의 획기적인 치료 방법이 개발될 것입니다.
이번 연구는 셀단위의 초고해상도 이미징을 얻는 것이 목적이었고,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 리보솜, 마이크로 RNA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 마이크로 RNA는 전자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는 구조물이었는데 빠른 시간 내에 3D로 볼 수 있게 된 것이죠.
또 신약 개발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올해 초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여 있죠. 치료제 개발이 시급한 상황인데 치료제의 성능을 확인하는 데 세포 투명화 이미징 기술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세포막에 바이러스가 부착하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되는데 어떻게 부착하는지 실제 이미지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세포 투명화 이미징 기술을 활용하면 개발된 치료약이 바이러스가 세포에 부착되는 것을 막아내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신약 성능을 테스트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현재 사스,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를 조합해서 시험하고 있는 단계이며 마이크로 RNA 이미징 가능 여부도 계속 연구 중입니다.
진료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전문 수술이 필요한 질환을 최소 침습 방법으로 수술하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목표입니다. 퇴행성 질환인 경우에는 수술이 필요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수술하지 않아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선택해야 하는 치료 방법이 수술이라는 것을 환자들이 잊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빨리 수술을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치료 방법이지만요. 저를 찾아오는 환자들에게는 담당 의사를 신뢰할 수 있도록 병의 특성과 수술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연구 분야에서는 척수손상의 원인과 답을 찾는 것이 목표입니다. 척수손상 환자를 수술하고 진료하고 또 연구하면서 난치성 척수질환에 연구 성과를 거두고 싶습니다. 척수손상으로 인한 고통을 겪는 환자들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는데 이런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임상적으로는 최소 침습 척추수술이 국제적인 표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최소 침습 척추수술은 우리나라가 기술적으로 많이 앞서 있지만 아직 국제적인 표준 수술 방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앞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전문가들과 역량을 모아 연구를 추진할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