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혈액검사로 알츠하이머병 진단,
족집게 감별 물질 발굴
신경과 조한나 교수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3년 치매역학조사 및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년 국내 치매환자 수는 97만 명, 2026년에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 치료제들이 승인을 받으며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 있지만, 다양한 원인 질환에 따라 각기 다른 임상 양상과 병리적 기전을 지니기 때문에 증상만으로는 알츠하이머병 여부를 감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에 신경과 조한나 교수가 미국 연구진과 공동연구를 진행해 혈액을 이용한 알츠하이머 병리 탐지 가능성을 세계 최초로 입증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글 편집실 / 사진 송인호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치매는 임상 증상만으로는 구별이 어렵고, 여러 발병 원인이 혼재해 PET 스캔, 뇌척수액 검사, MRI 촬영 등이 진단도구로 활용되어왔으나 각기 제약사항이 있었습니다. PET 검사는 퇴행성 뇌질환의 감별에 유용하기는 하지만, 경제적인 부담이 있고 큰 병원에서만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어요. 소도시에 사시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분들은 검사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혈액으로 알츠하이머 물질을 밝혀내는 연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연구에 착수할 당시 우리나라는 아직 알츠하이머를 진단하기 위한 혈액검사가 거의 없는 실정이어서 미국 UCSF(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메모리·에이징 센터(Memory and Aging Center) Lawren VandeVrede 교수팀과 국제공동연구팀을 결성해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들이 보이는 임상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어떤 연구를 수행하셨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알츠하이머병 핵심 병리 기전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생체지표인 p-tau217 물질의 유용성과 더불어 전두측두엽 치매(FTLD: frontotemporal lobar degeneration syndromes)검사 지표로도 활용 가능성을 보유했는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연구 대상군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와 전두측두엽 치매환자, 대조를 위한 정상인 등 다양한 퇴행성 뇌질환 임상 증후군 환자들로, 2008년 8월부터 2022년 7월까지 UCSF 메모리·에이징 센터에서 임상 평가를 받고 사후 뇌 조직을 기증한 총 349명(남성 55%, 사망 시 평균 72세)이었습니다. 이는 뇌 병리 확정 코호트와 혈액 데이터 부문에서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혈액 데이터에서 p-tau217과 신경 손상 정도를 보여주는 NfL(Neurofilament Light Chain), 신경계 염증 상태를 나타내는 GFAP(Glial Fibrillary Acidic Protein) 등 세 가지 바이오마커를 발췌해 농도를 정밀 분석 장비(SIMOA)로 동시에 살펴본 결과, 사후에 진행한 혈액검사에서 알츠하이머병 환자군이 지닌 p-tau217 농도(평균 0.28pg/mL)가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평균 0.10pg/mL)보다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이 동반된 전두측두엽 치매 환자가 보인 p-tau217 농도(평균 0.19pg/mL)도 알츠하이머병이 없는 경우(평균 0.07pg/mL)보다 유의미하게 높았습니다. 따라서 혈액 속 p-tau217 물질은 알츠하이머병 신경병리를 진단하는 데 매우 우수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치매 연관 증후군에서 알츠하이머병 진단 정확도(AUC)를 0.95로 유지해 매우 높은 수준을 보였고, 특히 전형적인 알츠하이머 집단에서는 0.98에 달하는 정확도를 보였습니다. 알츠하이머병 집단이 아니라도 0.89로, 비교적 정확한 성능을 유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바이오마커로 기대를 모았던 NfL과 GFAP는 각각 AUC 0.73, 0.75로, 알츠하이머병 진단 정확도에서 낮은 점수를 보였고, p-tau217 물질과 함께 사용해도 진단 가치를 크게 높이지 못했습니다. 이번 연구에서 전측두엽 치매로 진단된 환자군 중 약 23%는 알츠하이머 병리를 함께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두 가지 치매 형태가 동반된 경우, 인지기능 검사 점수(MMSE)를 포함한 기억력, 실행기능, 시공간 능력 등 인지 영역 전반에 걸쳐 더 나쁜 수행정도를 나타냈고, 뇌 뒤쪽 피질 위축이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 가지 바이오마커(p-tau217, NfL, GFAP)를 여러 치매 종류에 적용했을 때 비교 분석 그래프
이번 연구가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해 들려주세요.
혈액 기반 p-tau217 물질이 다양한 치매환자군에서 알츠하이머 병리를 정확하게 탐지할 수 있음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연구 성과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향후 정확한 감별진단, 치료제 선택, 예후 예측 등에 p-tau217물질이 핵심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향후 혈액을 기반으로 치매 조기진단과 치료 대상자 선별 표준 정립에 세계 최정상 그룹과 함께 진행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기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매는 개인의 병이 아니라 가족의 병이자 나아가 사회의 병입니다. 온 마을이 나서서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이제는 한 사람의 치매환자를 위해 사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번 연구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우리나라의 치매 진단과 연구 환경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연구가 어떻게 활용되기를 바라시나요?
치매는 걸리기 전인, 전 단계에서 치료받는 게 효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치매에 걸리는 순서는 먼저 머리에 나쁜 물질이 쌓이고, 점차 뇌세포가 죽은 다음 마지막 단계로 기억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뇌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리 나쁜 물질을 제거한다면 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으니 치매 전 단계에서부터 혈액검사를 통한 진단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건강검진처럼 스크리닝이 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기 위한 혈액검사가 현장에서 활용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업화되기까지 1~2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암 표지 검사처럼 알츠하이머도 혈액검사로 진단이 가능한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치매를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질병과 똑같이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치매는 정신을 차리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닙니다. 그냥 다른 질병처럼 머리가 조금 일찍 아픈 정도로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알츠하이머 이외에 어떤 치매라도 분명 의사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무서워서 망설이다 한참 진행돼서 오시면 사실 그때는 상당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치매가 의심되거나 걱정되는 부분이 있으면 빨리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는 것이 예방과 치료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제 세계적인 추세는 증상이 생기기 전 단계도 아닌, 정상 노인이라고 하더라도 혈액으로 미리 치매를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치매 검사에 거부감을 갖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분이 많은데 ‘이제 혈액으로도 치매를 검사할 수 있구나’라고 가볍게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