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디지털헬스 산업
어디쯤 왔을까?

글로벌 디지털헬스 산업은 고속 성장 중이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최적화하는 디지털 기술이 헬스케어와 결합하면 사회·경제 이슈가 얽힌 보건의료 복합 과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가 혁신 성장까지 견인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글로벌 디지털헬스 산업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배민철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사무국장

헬스케어

우리 사회는 다양한 복합 과제에 직면해 있다. 복합 과제란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구조적 사회문제를 말한다. 융합적 해법이 필요한 난제들이다. 보건의료 분야에도 이러한 복합 과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로 만성질환자가 늘고 의료비는 치솟는다. 의료자원은 한정돼 있고, 사회보험의 지속 가능성은 시험대에 오른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국가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이는 다수 선진국의 공통된 현상이며,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국내 상황은 심각 단계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데다, 전 국민을 위해 설계된 건강보험이 저부담·저급여 체계로 유지되면서 의료전달체계는 만신창이다. 의료쇼핑, 대형 병원 쏠림, 지역 간 의료 불균형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건강보험 보장률은 60% 선에서 맴돌아 평균 70%대 중반인 OECD 국가 중 최하위고, 필수의료는 붕괴 위기다. 코로나19 팬데믹에 의정 갈등까지 겹치면서 사회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고 국가적 손실은 막대해진다.

보건의료 분야의 오랜 난맥상을 곱씹으면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디지털헬스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정된 자원을 효율화·최적화하는 강력한 도구가 디지털 기술인데, 헬스케어와 결합하면 파급력이 배가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을 앞세운 4차 산업혁명이 글로벌 화두로 등장한 2016년에 세계적 컨설팅사인 맥킨지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한국의 경제효과가 2030년까지 최대 460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 중 보건의료산업의 몫이 100조 원으로 가장 컸다. 사회·경제 이슈가 얽힌 보건의료 복합 과제를 풀어내고 국가 혁신 성장까지 견인할 돌파구로 디지털헬스를 조명한 것이다.

강산이 한 번 변하기도 전에 4차산업혁명이 쏘아 올린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은 디지털전환(DX)을 거쳐 이제 AI전환(AX)으로 급속히 옮겨갔다. 미중 양강 구도가 형성된 가운데 전 세계 주요국에서 동시다발적이며,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로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양상이다. AI 기술은 데이터를 정보화해 학습하고, 전 산업에 적용돼 혁신을 견인한다. 건강 정보는 국가 전략 자산으로 간주된다. 디지털헬스는 건강 정보를 원천으로, AI를 자양분으로 삼아 성장하는 산업이다. 국가 경제 브랜드인 ‘진짜 성장’의 실현과 AI 기술 주권 확보 전략인 소버린 AI(Sovereign AI)에서 디지털헬스가 핵심 요소일 수밖에 없다.

글로벌 공통 과제인 디지털헬스 산업

최근 10년간 정권은 달라져도 디지털헬스는 변함없는 최우선 국정 과제다. 바이오헬스로 묶여 혁신성장 빅3산업, 6대 국가첨단전략산업으로 분류됐다가 이번 정부에서는 미래전략산업으로서 그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월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발표된 12대 중점 전략과제 중 AI G3 도약과 인구위기 대응을 통한 지속·균형 성장의 중심에 디지털헬스가 있다. 고질화한 복합 과제 해결을 위해 디지털헬스 기술의 보건의료 적용이 절실하고, 경제 안보와 미래 먹거리 창출 등 다양한 국가적 과제 해결을 위해서도 디지털헬스 산업의 기반 조성과 활성화, 경쟁력 확보 지원에 집중해야 한다는 상황 인식에서다.

글로벌 디지털헬스 산업은 속도전 양상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데이터와 SW, 비대면 등 디지털헬스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규제 혁신과 제도 기반 마련, 정책 지원으로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다. 디지털헬스 선도국이자 최대 시장인 미국은 21세기 치료법 제정과 디지털헬스 혁신계획 등 규제개혁으로 디지털헬스 신제품의 승인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 시장진입을 촉진하고 있다. 글로벌 헬스데이터 CRO(임상시험수탁기관)인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2015년까지 33건이던 미국 FDA의 AI의료기기 승인 건수는 2020년부터 매년 100건 이상 급증세다. FDA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AI의료기기는 기하급수로 늘어 현재 1,250개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민관협력을 통한 디지털헬스 연구개발에도 막대한 재정을 투여하고 있다. 인간 뇌세포 지도 구축을 위한 브레인 이니셔티브, 바이오데이터 수집·활용·분석을 위한 정밀의료 이니셔티브, 건강 정보를 열람하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블루버튼 이니셔티브, 암 정복을 위한 캔서문샷 이니셔티브 등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긴축정책으로 이런 연구들이 직간접적 타격을 받고 있지만, 미국보험청이 원격진료, 원격 모니터링, 디지털 치료 정책을 점진적으로 확대하고 있어 디지털헬스 산업 성장 기조는 여전하다.

규제 수준이 높은 유럽도 디지털헬스 필수 자원으로 건강 정보를 강조하고, 디지털헬스 산업을 집중 육성중이다.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을 개정해 건강 정보 등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 간 균형을 강조하고, 대규모 공공보건 빅데이터 프로젝트를 가동해 유럽 공동체의 의료 데이터 활용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EU4헬스 프로그램으로 건강문제 해결과 디지털 건강 정보 활용, 의약품 및 의료기기 접근성 강화 등을 위한 재정을 지원하고, 유럽헬스데이터공간(EHDS) 규정을 발효해 개인이 본인 의료 데이터를 관리·공유·활용 가능한 플랫폼을 구축해 역내 27개국 4억5,000만 명의 의료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고 있다. 프랑스, 핀란드, 영국 등은 자체 유전체 분석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디지털헬스 산업 경쟁력 강화를 추진 중이다.

각국 상황에 맞는 디지털헬스 산업 육성 정책

특히 독일은 2019년에 디지털헬스앱을 법정 급여대상에 포함해 의사 처방과 보상 표준화 프로세스를 유럽연합 최초로 법제화했다. 나아가 지난해 의료시스템 디지털화 촉진법을 제정해 전자환자기록을 의무화하고, 전자처방전 도입, 중위험 디지털헬스앱의 건강보험 적용, 원격의료 진료량 제한 해제 및 적용 분야 확대 등 디지털헬스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에 따르면 세계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디지털치료제 360개 중 220개가 의료기관에서 처방됐는데, 독일에서 급여를 받은 디지털치료제가 56개로 가장 많았고, 미국이 46개로 뒤를 이었다.

미국과 G2를 이루고 있는 중국 역시 건강 의료 빅데이터를 국가전략자원으로 삼고, 정부 리더십 아래 정밀의료 인프라와 원격의료 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오는 2030년까지 정밀의료 관련 5대 중점 프로젝트를 선정해 기술, 플랫폼, 시스템 구축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빅데이터 시스템 구축, 디지털헬스 산업 육성 및 시장 확대를 위한 중장기 전략을 추진 중이다. 차세대 AI 발전계획을 세워 전 산업과 의료 등 주요 응용 분야에 AI를 적극 결합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고 있다. 원격의료에서는 온라인 처방, 약 배송, 건강관리서비스 통합제공 플랫폼 구축지원 등 완결성 있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디지털화가 늦다고 평가돼온 일본도 건강 데이터 통합, 원격진료 제도화, AI 기반 기술도입 등 디지털헬스 인프라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차세대의료기반법을 제정해 의료 정보의 익명 및 가공 처리를 통한 거래를 허용한 데 이어, 스타트업 정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디지털청을 2021년에 신설하며 건강 데이터 통합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다. 제한적으로 허용해온 온라인진료도 항구화해 초·재진 수가를 정식 도입하고 의약품 배송도 허용했다.

도입기로 접어든 국내 디지털헬스 산업

세계 주요국이 잰걸음을 내디딜 만큼 글로벌 디지털헬스 시장의 성장세는 매섭다. 오랜 경기 불황의 터널 속에서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지난 3월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글로벌 디지털헬스 시장은 연평균 20% 이상 지속 성장해 오는 2033년에 1조6,000억 달러(한화 약 2,40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2024년 현재 2,400억~3,800억 달러(332~526조 원)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향후 5~10년 내에 시장규모가 1조 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디지털헬스 시장규모는 세계시장의 2%에 채 못 미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디지털헬스 산업협회의 2024년 디지털헬스 산업현황 조사연구에 따르면 2023년 실적을 기준으로 국내 디지털헬스 시장규모는 약 6조5,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3.5% 성장했다. 디지털헬스 데이터 수집·처리용 제품 및 부분품 제조업이 25.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디지털치료기기, AI의료기기, 전자약 등 SW의료기기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식약처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현재 AI의료기기는 2017년 첫 허가를 받은 이래 누적 388건을 기록하며 크게 늘어났다.

눈여겨볼 부분은 디지털헬스 사업체의 평균 운영 기간이 11.4년으로 전년 대비 3년 짧아지고, 회사법인과 본사·본부가 대폭 증가하는 등 시장경쟁 본격화와 대기업 투자에 따른 시장 집중화로 국내 디지털헬스 산업은 태동기를 지나 도입기로 접어드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양대 포털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의료 AI에 진심 모드를 켜고 디지털헬스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네이버는 의료 AI 솔루션 개발과 임상시험 데이터 플랫폼 투자를 강화하고 있고, 카카오는 모바일 기반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인 파스타와 병원 연계 챗봇 등을 통해 서비스 생태계를 넓히고 있다. 통신 3사도 다소 숨 고르기에 접어들었지만, 디지털헬스 분야에 대한 투자와 다양한 기술 실증을 지속하고 있다.

전자업계 양대 산맥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디지털헬스 진출도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갤럭시워치에 혈압·심전도·월경주기 등 다양한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기능을 강화하고 있고, 최근에는 미국 디지털헬스 기업인 젤스를 인수한 데 이어 미국에서 챗봇 형태의 AI 헬스코치도 연내 선보일 예정이다. LG전자는 사내독립기업(CIC) 슬립웨이브를 출범해 슬립테크 시장을 공략하는 한편, 올 상반기에는 미국에서 디지털헬스 스타트업인 릴리프AI를 출범하는 등 디지털헬스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헬스케어의 오랜 지불 주체인 보험사들도 저마다 웰니스서비스 플랫폼을 운영하며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KB손해보험과 교보생명은 헬스케어 자회사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대기업 건설사들도 건강상태 측정 등 다양한 디지털헬스 시스템을 적용한 홈케어로 소비자를 공략하고 있다. 최근 GS건설과 대우건설은 원격의료 연계 서비스를 선보이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고부가가지를 창출하는 융합산업

국가 미래 먹거리가 될 신비즈니스는 글로벌 트렌드인 제조의 서비스화, 서비스 주도형, 소비자 수요에 기반한 플랫폼 경제모델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디지털헬스 산업은 건강 정보와 AI에 기반한 융합형 사업모델을 바탕으로 제약·바이오, 의료서비스, 의료기기, 보험·금융, 건설, 전자, 모빌리티 등 다양한 이종산업군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대표적 융합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만큼 산업적 스펙트럼이 폭넓고, 초기 의료영역에서 일상적 건강관리 영역으로 적용 범위도 확대되는 등 고유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기술을 넘어 서비스, 구성요소, 데이터 가치사슬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개발, 생산, 운영, 유통, 활용 등 포괄적이고 확장성 있는 산업분류 프레임워크를 필요로 한다. 애석하게도 국내 디지털헬스 산업은 국정과제로 다뤄지며 전략적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정책지원의 기초자료가 될 국가승인통계도, 산업분류체계도 아직 부재한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헬스 시장 기반 조성을 위한 규제 혁신에서 속도가 더디다는 것이다. 국내 디지털헬스 기업들은 지속적 R&D 등을 통해 기술적 성숙도가 높아지고,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했음에도 여전히 시장진입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법제 개선과 규제 지원 노력이 뒤따르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적잖다. 전문가들은 데이터 활용과 원격진료 등에 관한 법적 규제와 의료 AI 솔루션의 건강보험 의료수가 적용 문제 등이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디지털헬스 산업에 대한 지원 근거는 현재 다수의 법률과 가이드라인에 산재해서 산업의 체계적 육성과 지원이 제약돼 있다. 세계시장에서 산업경쟁력을 가지려면 디지털헬스 산업 육성 법제화를 통해 그레이존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디지털헬스 산업 육성를 위한
생태계 마련이 필요한 때

과감한 규제 혁신과 함께 마중물 지원에서 해법을 찾을 필요도 있다. 중장기 전략은 거창한데 오히려 단기처방이 부족해 보인다. 디지털헬스 퍼스트무버 육성을 위한 수요 창출형 내수 진작책을 우선 시행해 민생경제 안정을 도모하고, 기업은 이를 트랙레코드로 삼아 적극적 해외 진출에 나서는 선순환 구조를 실현할 필요가 있다. 국내 디지털헬스 수출액은 7,000억 원 규모로 미미하다. 시장진입에 어려움을 겪는 디지털헬스 기업의 트랙레코드 부족이 해외 진출에 걸림돌이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마중물을 붓기 위해 전기차 구매 지원과 같은 보조금이나 디지털헬스 서비스 전용 바우처의 활용도 적극 고민해볼 만하다.

디지털헬스의 넓은 스펙트럼과 융합산업적 특성을 살펴 체계적 산업 육성과 진흥을 위한 거버넌스를 만들고, 재정 지원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생태계를 조성해야 스타기업, 유니콘기업이 등장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는 혁파하고 산업 진흥에 무게추를 실어야 하며, 법제화로 이를 뒷받침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건강 정보 활용을 위해 데이터의 가치평가와 보상 방안 마련도 절실하다. 향후 진흥과 규제를 명확히 가려 디지털헬스를 위한 제도적 거버넌스를 구축해야만 디지털헬스 산업의 티핑포인트를 앞당길 수 있리라 사료된다.

배민철

언론학을 전공하고, 보건의료 전문기자로 정책과 산업, 고령화를 취재했다. 이후 디지털헬스 기업인 라이프시맨틱스에서 국내 첫 재외국민 대상 원격의료 서비스에 대한 규제샌드박스 임시허가를 주도하며 디지털헬스 분야 국내 1호 코스닥 기술특례상장에 기여했다. 현재는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