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노인 환자를 위해
온 나라가 나설 때!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 길을 걷고 있다. 고령인구 증가는 곧 질환을 갖는 인구 증가로 이어지면서 돌봄 수요 증가, 부양인구 증가, 의료비 증가, 경제성장률 하락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한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인 환자의 진료 방향을 논의하고자 자리를 함께한 가정의학과 이용제 교수, 내분비내과 박종숙 교수, 신경과 정요한 교수는 노년기 보건의료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절실한 시점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글 편집실 / 사진 백기광

PART 1.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 현장의 변화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가고 있다는 점을 의료 현장에서 체감하시는지요?

이용제 교수 :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고령 환자의 수도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노인환자는 하나의 질병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 질환을 앓으며 여러 약제를 복용하고 있습니다. 복합 질환들 대부분이 만성질환에 해당되어 입원치료를 비롯한 지속적인 관리치료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노인환자의 예후는 의학적인 면뿐만 아니라 심리적,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되기 때문에 돌봄시스템에 대해 궁극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정요한 교수 : 저는 4~5년 전부터 노인 환자 비중이 커졌다는 점을 인지했습니다. 우리 병원 신경과 뇌경색 환자의 통계를 보니 2018 년 기준으로 입원 환자 평균 나이가 66세였던 것이, 2022년에는 68세였습니다. 신경과 시술을 받는 환자의 나이도 과거 60~70대가 주였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80~90대까지도 시술을 받고 있어 초고령의 환자가 증가하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나이를 보는 관점이 달라져야 됩니다. 과거처럼 절대적인 나이로 환자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실질적인 신체 나이를 고려할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박종숙 교수 : 내분비내과를 찾는 고령 환자 중에는 당뇨병 환자가 많습니다. 당뇨병 외에 여러 질환을 동반한 경우도 많죠. 당연히 복용하는 약제도 많고요. 나이가 들어 스스로 관리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보호자가 같이 모시고 다녀야 하는데 형편상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내원조차 못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호소하시는 분도 있고요. 꼭 대학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어서 보호자를 동반하고 비용 들여가며 힘들게 오시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지만 이런 환자를 연계할 수 있는 지역사회 의료기반이 없어 안타까운 실정이에요.

고령 환자가 늘어나면서 진료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이용제 교수 : 암 치료의 대부분은 수술, 약물, 방사선 등 세 가지로 대변되는데, 항암치료 중이거나 치료가 끝난 후 환자들이 가정의학과를 찾아와서 암을 일으켰던 원인이 되는 생활습관을 교정하고 치료 전 삶의 질을 최대한 회복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질병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 더 큰 질병으로 가지 않게끔 임상예방학적으로 관리한다고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의료시스템상 의사는 환자에게 투약이나 시술 등 결정적인 치료 포인트 위주로 짚고 넘어가는 역할을 하므로, 평소 몸 관리는 환자 스스로 실천해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 자녀와 떨어져 홀로 생활하는 노인이 많아 근본적인 생활습관에 변화가 생기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보다 고령화가 10년 앞선 일본의 경우처럼 재택의료를 비롯한 재가 돌봄시스템과 지역사회 돌봄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의료와 복지가 접목된 시스템을 거시적으로 도입해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요한 교수 : 나이가 들수록 의학적 신체 상태가 저하되고 혼자 사시거나 아예 직계 가족이 없는 환자들이 늘어나 앞으로는 병원에서 법적 보호자를 찾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리라 봅니다. 특히 뇌졸중 환자는 치료하고 나서 후유증이 남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보호자나 간병인이 있어야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여의치 않은 분이 많습니다. 사회제도적으로 이를 보완하고 지원해주지 않으면 신속하고, 지속적인 치료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경과에서 혈전 용해 치료나 혈전 제거 시술을 하려면 환자 동의가 필요한데, 뇌경색이 발생해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에는 치료절차가 지연 될 수 있습니다. 의사 3인의 동의로 치료나 시술이 이루어 질 수는 있지만, 만약 환자 동의 없이 의사 판단으로 진행했다가 치료 결과가 나쁘면 민원이나 법적 절차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이런 부담을 안고 치료에 임하기에는 의사가 지니는 부담이 너무 커집니다. 치료 결정이 시급한 중증 또는 필수 치료에 있어 이런 부분은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부분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의료 분쟁과 관련해서는 적정 보상 체계가 없고, 소송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에 소신 진료에 대한 법적 안전망 구축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최근 정부에서는 이런 점을 인지하고 변화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느껴집니다.

박종숙 교수 :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현재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18.4%이며, 2025년에는 20.6%로 전망됩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문제는 아픈 사람이 더 많아진다는 점인데,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가 전체 진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1년 44%에서 2050년에는 70%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를 떠안아야 하는 젊은 층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혈당조절 등 다른 질환으로 입원했다가 급성기를 지나 회복기에 접어들었지만, 이분들을 치료·관리할 병원이 없다 보니 우리 병원에서 나가 갈 곳이 없습니다. 결국 중증 환자가 병실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거죠. 상급병원이 맡지 않아도 될 환자를 케어할 수 있는 지역사회 의료기반, 돌봄시스템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이 시급하지 않나 싶습니다.

PART 2.
고령 노인 환자를 위한 제도 변화의 필요성

세 분 교수님 말씀을 듣고 보니 노인 환자 진료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용제 교수 : 이제 시대의 흐름은 의사 개인의 능력과 선함에 기대는 의술에서 벗어나 지역사회, 공공기관, 커뮤니티 전체의 일원으로서 노년 환자를 종합적으로 돌보는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복지사회로 나아가는 보건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선진형 의료체계 시스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왜곡된 보험수가를 정상화해 복지와 보건 부문에서 예산 분배가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보건과 복지는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에 보건이 복지로 다가와서 예산 집행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노인 환자를 위한 진료는 단순한 질병 ‘케어(care)’를 넘어 삶의 질을 극대화하는 ‘큐어(cure)’를 위한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앞서 박종숙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현재 지역사회 의원과 상급병원 사이에 중간역할을 담당할 미드필더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1차 의료기관과 상급병원 사이를 연계하는 중간 다리를 마련하기 위해 의료전달체계를 재정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요한 교수 : 노인 환자는 다수의 질환을 가지고 있고, 중증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노인 환자가 중증 질환으로 가기 전, 이들이 가진 위험인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이는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1, 2차 의료기관에서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국민이 1차 의료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다는 점입니다. 어떤 환자들은 의원에서의 진료가 조금만 마음에 안들어도 3차 의료기관을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불만 내용을 들어보면, 소통의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명 불충분과 불친절로 상급병원을 찾는 환자도 있으며, 한 질환으로 여러 병원을 다니는 환자도 다수 경험했습니다. 의료전달체계에 대한 환자의 인식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힘듭니다. 결국, 큰 병원으로 환자가 몰릴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상급병원에서는 중증 환자 위주의 진료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자원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의료는 사회가 동의하는 범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되어야 하는 영역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좀 더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용제 교수님 말씀처럼 노인 문제에서는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함께 복지가 같이 가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 차원의 제도적 변화와 지원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박종숙 교수 : 예전에 비해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 대사질환에 대한 예방 교육도 잘 이루어지고 있고, 관리에 대한 홍보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지만, 환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결국 고령 환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데 우리의 준비는 너무 미비해요. 특히 보여주기식의 단발성 정책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좋은 취지의 의료시범사업들을 도입해왔지만, 정작 정착되지 못하는 것은 관 주도로 진행되다 보니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초고령사회를 극복하려면 시스템이 달라져야 하고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느라 세 분 교수님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고령 환자를 위한 제도 변화가 시급하지만 결코 쉽지만은 않은 일일 텐데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마무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용제 교수 : 새해를 맞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라는 덕담을 많이 주고받습니다. 그만큼 건강과 행복이라는 두 단어는 단순한 병립 관계가 아니라 상호 간에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해요. 노인들에게 있어 건강과 행복의 대척점에는 아픔과 가난과 외로움이 있습니다. 혼자 사는 가난하고 아픈 노인들에게 필요한 정책 집행과 의료진의 따뜻한 돌봄케어시스템이 어우러져 이분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정요한 교수 : 고령 환자가 많아지면, 이들이 혈관성 위험인자를 가질 확률이 높고, 결국 뇌졸중이 생길 위험은 올라갑니다. 따라서 여기에 대한 치료 요구가 증가하게 되는데, 이에 대처 할 충분한 의료적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저는 아직 부족하다고 봅니다. 응급으로 24시간 365일 진료가 필요한 영역을 담당하려는 젊은 의사는 점점 보기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환자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는 보람에 필수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이 버티고 있지만, 이것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많습니다. 정부를 비롯해 관련 기관 모두가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여야 하고, 이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박종숙 교수 : 급성기 치료는 대학병원에서 담당하되 이후 환자 상태에 맞춰 전문화된 치료를 계속 받을 수 있는 연계 병원으로의 전원이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노인 환자를 위한 돌봄시스템 프로그램이 정부 차원에서 잘 세팅되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