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 디지털 정신 건강
의료를 선도하는
전문기업 마인즈에이아이
정신건강의학과 석정호 교수
의료 패러다임이 치료에서 예방으로 전환함에 따라 디지털 기술이 의료 현장에 접목되고 있다. 그 덕분에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들이 ‘활동 범위’를 확대해 국민 건강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의료 기술과 기기를 연구개발하며 창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우울증, 트라우마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정신건강의학과 석정호 교수가 정신 건강 디지털 헬스케어 전문 스타트업 ‘마인즈에이아이’를 창업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글 편집실 / 사진 윤선우
우울증 위험을 진단하는 정신 건강 신호등
국내 우울증 환자 100만 명 시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87만 명이던 우울증 환자가 2023년에는 109만 명으로 약 2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은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증상이 악화하거나 일상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조기 진단과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환자 스스로가 우울증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숨기기에 급급해 진단이 늦어지고 치료가 더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석정호 교수가 우울증 진단 솔루션 개발에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석정호 교수가 설립한 마인즈에이아이는 마음의 병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예방·관리하기 위한 교원창업기업으로, 정신 건강 분석평가 프로그램인 ‘마인즈내비(Minds.NAVI)’와 정신 건강 VR 평가·교육·훈련 프로그램인 ‘치유 포레스트’를 개발·운용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개인 맞춤 치유 심리상담까지 원스톱 정신 건강 통합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 곳에서 개발한 마인즈내비는 하루 네 번 침을 채취해 우울증인지 아닌지 진단하는 기술이다. 이용자가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타액 수집 튜브 4개가 들어 있는 키트를 택배로 보내주고, 온라인 심리검사지를 작성하며 취침 전과 후, 기상 후 30분과 1시간에 적정 용량의 침을 뱉고 다시 택배로 보내면 일주일 뒤 ‘정상, 관심, 경계, 위험’ 등 네 가지 우울증 세부 지표가 담긴 결과지를 받아볼 수 있다. 석정호 교수는 코르티솔과 디하이드로에피안드로스테론(DHEA) 호르몬이 주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량이 증가하는데, 우울증 환자들은 이 호르몬이 잘 분비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우울증 진단 키트 개발에 착수하게 됐다고 한다.
“코르티솔과 DHEA를 분석하면 우리 몸 부신피질의 스트레스 대응 단계가 지금 정상적인 단계인지, 급성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단계인지 아니면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소진되는 단계인지, 분석 프로토콜에 의해 결과가 나오게 돼 있어요. 그러면 심리지표 결과와 타액 호르몬 분석결과를 합쳐서 정신 건강 신호등으로 표현해요. 파란색과 노란색은 아직 우울증이 아닌 단계, 오렌지색과 빨간색은 우울증이 시작돼 치료가 필요한 단계이거나 중증으로 진행된 단계라고 해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스템이 실제로 잘 작동하는지, 정신과 의사가 진단한 것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어떤 정도의 정확도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임상시험을 두 차례 거쳤습니다.”
그 결과 마인즈내비는 우울증 진단의 민감도 97%, 우울증이 없음을 진단해주는 특이도 95%, 이 둘을 통합한 정확도 95%의 정확도를 나타냈다. 이처럼 침 속에 있는 호르몬을 분석해 스트레스 대응 단계를 평가하고 심리 평가지표까지 포함한 진단 솔루션은 전 세계에서 처음 개발됐다. 이에 2022년 식약처로부터 유효성과 안전성 평가를 위한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고, 2024년 확증 임상시험을 거쳐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품목허가를 받았다.
우울증 명의가 창업자로 나선 이유
사람들이 겪는 정신과적 증상들은 단지 의지나 마음먹기 나름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다. 따라서 각 증상에 맞는 치료가 필요하며, 다양한 의료 데이터 분석과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맞춤형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해 정신질환 치료의 새 시대를 열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담았다. 석정호 교수가 마인즈에이아이를 창업한 이유다.
“내가 우울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도 사회적인 편견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증 같은데 ‘정말 우울증이 온 걸까?’를 고민하다가 몇 달을 보내기도 하고, 또 ‘멀쩡한데 무슨 우울증이야?’라는 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우울증을 이해받지 못해서 치료 시기를 놓치는 분도 많아요. 우울증이 의심될 때 몸속 타액을 모아 코르티솔 농도를 분석하는 의료기관에 보내고 온라인 설문에 답하는 과정만으로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되고, 우울증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진단 프로그램이 활용되면 숨은 우울증을 찾아내 치료를 유도하고, 중증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20년 넘게 난치성 우울증 클리닉을 운영해온 석정호 교수는 2016년 10월 산업통상자원부 연구 과제를 시작한 것이 창업의 계기가 됐다. 자살 위험성이 높은 우울증 환자들을 진단하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치료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는 것이 과제의 마지막 목표다. 문제는 ‘누가 사업화를 할 것인가’였는데 당시 연구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회사들과 연세대학교, 강남세브란스병원 중에 끝까지사업화를 추진할 수 있는 적임자가 석정호 교수라는 판단하에 창업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많은 오해를 받았고 특히 대학병원 교수가 돈 벌려고 사업하느냐는 부정적인 시선도 감수해야 했지만, 이제는 좋은 일들을 할 수 있다면 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 석정호 교수의 솔직한 심정이다.
미래의료를 위해 활성화되어야 할 교원창업
우리나라에서 약물 치료는 세계 수준으로 발전해 있는데 우울증과 같은 정신건강치료영역에서 심리사회적 개입에 대한 건강보험수가가 매우 낮은 수준이라서 환자를 위해 실제적으로 제공되는 심리사회적 치료가 제한적인 것이 현실이기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간 의사가 작성한 진료 차트 기록을 분석해 우울증 확률을 계산하는 해외 소프트웨어가 국내에 도입돼 인허가를 받은 적은 있지만, 우리처럼 실제로 설문지와 타액 호르몬 수집·분석 프로토콜을 자체 개발해 특허를 취득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사례는 국내 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도 이런 우울증 진단 솔루션이 없기 때문에 신의료기술로 인증받는 일도 중요하지만, 많은 분에게 적용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요양급여로 등재되게 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대학병원 교수들에게 주어진 역할은 진료, 교육, 연구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일이다. 여기에 더해 강남세브란스병원은 연구중심병원 인증을 계기로 미래의료를 위한 교원창업을 더욱 활성화해나갈 계획이다. 그러기에 강남세브란스병원 1호 교원창업기업 대표이사로서 석정호 교수는 임상 경험과 데이터들을 사업화해서 수익을 창출하고 다시 병원 발전을 위해 재투자하는 트랙을 먼저 걸어간다는 책임감이 큰 것이 사실이라 말한다.
“창업과 진료, 연구, 강의를 병행하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무엇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에 밸런스를 잘 맞춰나가야 하거든요. 진료 부담을 조금만 줄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현재 창업을 고민하는 분들이라면 목표가 정말 무엇인지를 심사숙고하고 결정하셨으면 합니다. ‘한번 해보고 안 되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할 거면 아예 시작하지 말아야 되고, 자신이 연구개발한 기술이 논문 발표로만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를 위한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선다면 사업화에 도전해봐도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